2017.10.30 20:56
낮에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밤에는 클럽 가수로 일하는 마리나는 올란도라는 나이 지긋한 남자와 동거 중입니다.
하지만 마리나의 생일날 밤, 올란도는 급사하고 말아요. 이것만으로도 슬픈 일이지만 마리나의 수난기는 막 문이
열렸습니다. 경찰과 올란도의 가족들을 포함한 전우주가 마리나를 괴롭힐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카운터테너 프리마돈나. 세바스찬 렐리오의 [판타스틱 우먼]의 주인공 마리나는 이 두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마리나의 이야기는 거의 오페라스러워요. 몇 세기 전부터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써먹었던 설정이라 더 이상 진부하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죠. 죽은 연인의 가족에게 구박당하는 비련의 여자주인공요. 단지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여자주인공을
괴롭히는 건 계급차인데, 이 영화에서는 호모포비아입니다. 마리나는 트랜스젠더거든요.
당연히 현대 칠레에서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수난이 총동원됩니다. 거의 백화점 상품처럼 전시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마리나는 모범적인 오페라 프리마돈나가 그렇듯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숨기지 않으며 고난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이 모든 것들을 장엄하고 현란하게 과시하지요. 그리고 후반부터 카운터테너 프리마돈나가 더 이상 은유가 아닙니다. 마리나는 클럽 가수로 일하고
있지만 클래식 트레이닝을 받은 카운터테너이고 그녀의 고난은 진짜 예술로 승화가 됩니다.
이 냉소주의의 시대에 [판타스틱 우먼]은 드문 영화입니다. 과장된 멜로드라마이면서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몸을 숨길 변명 따위는 찾지도 않죠. 종종 과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이런 영화에서 그 과함이 단점이 되지는
않죠. 전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차기작 [불복종]이 더 기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망해도 심심한 영화는 안 나올
거예요.
최근 트랜스젠더 소재 영화들의 캐스팅에 대한 논란이 있었죠. 이 영화는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 다니엘라 베가를
캐스팅하면서 정면돌파했습니다. 그리고 베가는 캐릭터와 완전히 일체가 된 훌륭한 배우예요. 인재는 찾으려 노력하면
어디서건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7/10/30)
★★★☆
기타등등
베를린에서 베가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어도 좋았을 거예요. 상은 김민희에게 돌아갔고 전 여기에 조금의 불만도 없습니다만.
감독: Sebastián Lelio, 배우: Daniela Vega, Francisco Reyes, Luis Gnecco, Aline Küppenheim, Nicolás Saavedra, Amparo Noguera,
Trinidad González, 다른 제목: A Fantastic Woman
IMDb http://www.imdb.com/title/tt563935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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