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2014)

2014.08.19 00:39

DJUNA 조회 수:13335


[해무]는 [살인의 추억]의 각본가였던 심성보의 첫 감독작으로, 연우무대에서 공연했던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원작은 2001년에 일어났던 제7 태창호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고요. 영화의 시대배경은 IMF 위기가 막 닥친 1997년으로 잡고 있습니다만.

전진호라는 어선이 무대입니다. 배를 잃을 위기에 몰린 강선장은 최후의 선택으로 조선족 노동자들의 밀항을 돕는 일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일은 영화 중반에 끔찍한 사고로 연결되고 곧 전진호엔 지옥문이 열립니다.

영화는 왜 주인공들이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를 다룬 전반부와 그 사고 이후 벌어지는 파국을 다룬 후반부로 나뉘어있습니다. 이 두 도막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영화입니다.

비교해서 더 좋은 건 전반부입니다. 어선의 일상을 다룬 오프닝은 생생하기 그지 없고 지금까지 올바른 길만 가던 뱃사람인 강선장이 밀항일을 선택하는 과정도 1997년 당시의 시대묘사를 배경으로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캐릭터 묘사는 단순하지만 정확하고, 일단 전진호가 조선족 밀항자들을 태운 뒤부터는 사고까지 몰고 가는 과정의 서스펜스도 좋은 편입니다.

좋은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았으니 이용만 하면 될 거 같은데, 후반부는 기대보다 미진한 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굴러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전반부의 목표가 재료들을 이치에 맞게 쌓아올리는 것이라면 후반부는 결말을 하나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재료들을 몰고 가는 것인데, 당연히 후자 쪽이 인공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 이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죽어나가는 부분은 거의 슬래셔 영화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여전히 끔찍하긴 하지만 이건 전반부를 보고 기대했던 파국과는 조금 다른 종류입니다.

후반 주인공의 선정이 최선이었는지도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입니다. 강선장, 조선족 승객 홍매 그리고 홍매를 도우려 하는 막내 선원 동식이죠. 영화는 동식을 주인공으로 선택하는데, 일단 이치는 맞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며 가장 속이 잘 들여다보이니까요. 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건 지나치게 손쉬워서 싱겁죠. 홍매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정말 장르 호러가 되었을 것 같고 스토리 상 최종 악당이 될 수밖에 없는 강선장으로 이야기를 푸는 것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입체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느 쪽이건 강선장의 비중을 조금 높이는 편이 좋았을 거예요. 에이허브가 스타벅보다는 비중이 커야 균형이 맞죠. 파국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는 의지가 표면에 드러나야 하는 겁니다.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원작이 연극이라는 것이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적 스펙터클이 부족하기 때문에 '연극적'이라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같은 소재를 다룰 경우 연극 쪽의 스펙터클이 더 강렬할 수도 있죠. [해무]의 문제점은 이 영화가 '연극'처럼 보이지 않고 '연극을 각색한 영화'처럼 보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데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으니 간단히 넘기기로 하죠. 하지만 제목이 [해무]인 영화에서 바다의 비중이 이렇게 적은 건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연극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으며 충분히 영화적인 무언가를 넣을 수 있었던 기회가 날아간 것 같습니다.

불만을 늘어 놓기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겠지만, 그래도 [해무]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지만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원초적인 욕망이나 동기와 연결되어 있어 떨쳐내기 힘들고, 이는 1997년이라는 구체적인 시대배경과 연결되어 사회적 차원까지 부여받습니다. 설득력 없는 이야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죠. 그리고 위에 언급한 단점들은 호흡이 좋고 인상적인 배우들에 의해 많이 보완됩니다. 감독보다는 배우들의 덕을 더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지만. (14/08/19)

★★★

기타등등
전 한예리의 연변 억양이 얼마나 정확한지 궁금합니다. 우리 귀엔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네이티브가 아니면 모르는 거죠. 전라도 억양의 경우 의외로 이희준이 잘 한다고 하더군요.


감독: 심성보, 배우: 김윤석, 박유천, 한예리, 문성근, 김상호, 유승목, 이희준, 조경숙, 정인기, 기주봉, 예수정, 윤제문, 조덕제, 다른 제목: Haemoo

IMDb http://www.imdb.com/title/tt33037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97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