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2020)

2023.08.22 23:16

DJUNA 조회 수:1700


정우성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단편 영화를 만들어왔고 그 중 몇 편을 제가 영화제 같은 곳에서 봤어요.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감명 깊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언젠가 정식으로 감독 데뷔를 할 거라는 건 알았죠. 그런데 단짝 친구 이정재가 먼저 [헌트]로 감독 데뷔를 해버렸네요. 그리고 1년 뒤에 정우성의 첫 장편 감독작 [보호자]가 나왔어요. 꽤 오래 전에 찍은 모양이지만.

[헌트]에서 이정재가 그랬던 것처럼, 정우성은 주연도 맡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사람 캐릭터는 수혁이고 1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막 나왔어요. 여자친구를 찾아갔는데, 글쎄, 자기 딸을 낳아 혼자 키우고 있어요. 조직의 보스는 수혁을 제거하려 하고 다소 맛이 간 용병 커플을 킬러로 고용합니다. 커플은 수혁을 죽이려다 (이미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여자친구를 사고로 죽이고, 수혁은 딸을 지켜야 합니다.

한마디로 양아치들이 나와 양아치들처럼 구는 영화입니다. 이런 애들이 쿨한 척 하는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으니 장 피에르 멜빌의 죄가 크죠.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의 클리셰와 스테레오 타이프로 가득 차 있어요. 수혁은 그 중 가장 뻔한 스테레오타이프이고, 여자친구나 딸도 만만치 않죠. 특히 딸 이빈의 캐릭터를 보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여자아이라는 존재를 일종의 상상 속 동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이건 [레옹]의 죄가 커요.

영화가 그렇다고 예상대로만 진행되는 건 아닙니다. 영화를 보면 대충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상상이 가잖아요. 딸 아이는 납치당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수많은 양아치들을 죽이고. 그리고 관객들은 그 정당한 살육을 즐기는 거죠. 그런데 이 영화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수혁은 프롤로그가 끝난 뒤론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아이가 납치 당하고 구출되고 사람들이 죽는 일들이 벌어지긴 하는데, 이게 당연한 논리순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건 재미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레옹]처럼 시작했지만 코엔 형제 영화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있단 말이죠. 모든 게 카오스이고 계획대로 진행되는 건 하나도 없고. 그리고 이 혼란스러움을 컬러풀한 캐릭터들이 채우는 거죠. 잘 풀리면 그렇게 될 수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가능성을 거의 살리지 못합니다. 이건 정통적인 '양아치 아빠, 딸 구하기 대작전'의 각본보다 훨씬 쓰기 힘든데,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걸 살릴 테크닉이 부족해요. 그리고 이야기가 아주 막 나갈 수도 없잖아요. 애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수혁도 죽일 수는 없어요. 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니까. 결말은 정해져 있고 그 사이에 변주할 수 있는 여유도 적고. 한국 조폭 영화 틀 안에서 신선한 양아치 캐릭터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영화가 그나마 공을 들였고 종종 재미있는 건 박유나와 김남길이 연기하는 살인청부업자 커플인데, 그렇다고 이 캐릭터들이 잘 만들어졌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단지, 의욕도 생각도 감정도 없어 보이는 수혁보다는 재미있을 뿐이죠. 아무리 엉망진창 상황이라도 주인공이 최소한 의욕은 보여야죠. 전 아이가 위기에 빠져 있는데 다급함이 안 보이는 주인공들이 정말로 싫어요. [아저씨]를 그래서 싫어하죠. (23/08/22)

★★

기타등등
전 수혁이 보스가 준 현금 가방을 거절할 때부터 되먹지 못한 놈이라는 걸 알았어요. 이미 여자친구가 혼자 딸을 키우고 있는 걸 안 뒤였다고요. 막 출옥하고 돈 한 푼 없는 놈이 찬물 더운물을 가리고 있네?


감독: 정우성, 배우: 정우성, 김남길, 박성웅, 김준한, 박유나, 이엘리야, 다른 제목: A Man of Reas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21387514/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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