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에서 온 이방인]은 수잔 노스라는 학교 교사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실종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잠시 그 동네 여인숙에 수상쩍은 남자가 나타나 음료수를 요구합니다. 맥주를 받아마신 그 남자는 SF에 나오는 로봇이나 외계인 특유의 딱딱한 말투로 여인숙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분명 중상을 입고 있어야 할 수잔이 여인숙으로 들어옵니다. 교통사고 때 입은 상처가 거의 회복된 상태로요. 그 때 그 남자는 자신이 금성에서 온 외계인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 때 관객들은 남자의 얼굴을 처음 봐요. 그 때까지 영화는 남자의 뒤통수만 보여주었거든요. 금성인은 흔해 빠진 백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요.

금성인은 평화를 위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지구인들이 막 발견한 핵 에너지를 현명하게 쓰도록 조언하는 것도 임무 중 하나지요. 잘못하면 핵폭발로 태양계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나요. 소행성대에 있던 행성도 핵폭탄 때문에 멸망했다고 합니다. 금성인은 몸이 견딜 수 있는 며칠 동안 전세계 국가의 리더와 만나고 싶어하지만 이 나라(영국 영화지만 배경이 되는 나라의 국적을 적당히 흐리고 있습니다)는 외계인의 기술을 강탈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어디서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나요. [지구가 정지된 날]의 영국판 리메이크로 알려진 영화입니다. [지구가 정지된 날]에 나왔던 패트리샤 닐도 여기에 나오죠. 하지만 공식적인 리메이크는 아니고 그냥 짝퉁 같습니다. 그리고 저예산 짝퉁이지요. 버나드 허먼의 음악도 없고 당시엔 최첨단이었던 특수효과도, 로봇도 없습니다. 비행접시도 아주 잠깐 나오고요. 영화의 대부분은 시골 여인숙에서 일어나고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영화만의 장점이 있나? 아무래도 영국에서 찍었기 때문에 당시 미국 영화들과는 분위기가 더 다릅니다. 정적이고 덜 흥분해 있지요. 무엇보다 [지구가 정지된 날]의 후반을 거의 망칠 뻔했던 느끼한 기독교적 타협이 없습니다. 여전히 예수서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지만요. 이야기의 구조도 깔끔해요.

볼만한가? 퍼블릭 도메인이고 길지도 않으니 한 번 정도 챙겨보셔도 되겠습니다. 하지만 백인 남자가 외계인/짝퉁 예수인 척하는 50년대 SF영화는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건너 뛰셔도 돼요. (23/08/11)

★★☆

기타등등
1954년이라면 패트리샤 닐이 게리 쿠퍼의 스캔들 때문에 잠시 할리우드를 떠나 있었던 때죠. 로알드 달과 결혼한 게 1953년이었고요.


감독: Burt Balaban, 배우: Patricia Neal, Helmut Dantine, Derek Bond, Cyril Luckham, Willoughby Gray, Marigold Russell, Arthur Young, 다른 제목: Immediate Disaster, The Venusian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7529/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8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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