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드 밀의 [지상 최대의 쇼]는 최악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으로 종종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비슷한 영화로는 [브로드웨이 멜로디], [시마론], [크래쉬], [80일간의 세계일주], [그린북] 등등이 있지요. 옛날 사람들의 판단이 틀리는 건 흔한 일인데, 이 영화가 특별히 구박받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강력한 경쟁자인 [하이 눈]의 각본가가 블랙리스트 작가인 칼 포어먼이었고 세실 드 밀이 할리우드 매카시즘 열풍의 선봉장이었어요. 정치적 분위기와 거장에 대한 예우가 결합되어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이유는 보다 명확합니다. 그 해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해였어요. 그 해 아카데미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를 눈 앞에 놓고도 작품상 후보에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실 드 밀의 범작에게 작품상의 영광을 돌렸죠.

당연히 구박받을만 한데,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상 최대의 쇼]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잘 기억될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결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며 종종 투박하고 조악하지만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의 천진난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그 매력에 휩쓸렸던 사람 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었지요. 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 것도 바로 스필버그가 [파벨만스]에서 이 영화를 강렬하게 회상했기 때문이고요. 아마 이 영화는 앞으로 [파벨만스]의 주석 정도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커스 영화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버논 앤 베일리 서커스단이 배경이에요. 찰턴 헤스턴이 연기하는 브래드 브레이든이라는 단장이 이끄는 서커스단이 열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하는 동안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어요. 이 중 일부는 실제 서커스 운영 과정과 공연을 다큐멘터리처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여기하는 허구의 인물들 이야기가 삽입되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재미있거나 신선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줄기는 공중곡예사 세바스찬이 들어오면서 브래드와 브래드의 여자친구이고 역시 공중곡예사인 홀리 사이에 삼각관계가 벌어진다는 것이죠. 여기엔 살인죄를 저지르고 광대 분장 속에 진짜 얼굴을 숨긴 버튼스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습니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이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영화 내내 분장을 하고 나온 건 초상권과 관련된 계약 때문이라도 어디선가 들은 거 같습니다.) 이 진부함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었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서커스 세계를 화려한 스펙터클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을 테니까요.

영화에서 멜로드라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커스 단원들의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종종 멜로드라마도 그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되지요. 브래드는 세바스찬의 연적이지만 세바스찬이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곡예로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합니다. 홀리는 멜로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곡예사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멜로드라마가 정리된 뒤에도 서커스를 살리고 곡예를 하는 것을 연애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건 할리우드 사람들이 서커스 사람들에게 보내는 존경의 표시였을 거예요.

스펙터클 이야기를 한다면, 구경거리가 많은 영화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단 스타들이 안 나오는 서커스 장면은 진짜입니다. 심지어 스타들이 나오는 서커스 장면 일부도 진짜예요. 홀리 역의 베티 허튼과 앤젤 역의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진짜로 서커스 곡예를 배웠기 때문에 얼굴이 드러나는 곡예 장면이 곳곳에 삽입됩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세바스찬 역의 코넬 와일드는 아무래도 스턴트 더블 티가 좀 많이 나지만요. 하지만 현대 관객들에겐 옛날의 소박한 트릭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수도 있지요. 세바스찬이 실수로 추락하는 장면에서 안전망을 어떻게 감추었는지를 보세요. 아, 그리고 [파벨만스]에도 나오는 기차 충돌 장면이 얼마나 모형처럼 보이는지도요. 그 장면은 모형인 티가 나도 재미있는 게 아니라 모형 티가 나기 때문에 더 재미있지요. (23/06/12)

★★★

기타등등
영화의 다큐멘터리 터치는 당시 할리우드가 어떻게 실제 세계를 '백인화'시켰는지 보여줍니다. 극영화 파트에서는 오로지 백인만 나오지만 다큐멘터리 파트에서는 비백인 노동자들과 관객들이 보이거든요.


감독: Cecil B. DeMille, 배우: Betty Hutton, Cornel Wilde, Charlton Heston, Dorothy Lamour, Gloria Grahame, Henry Wilcoxon, Lyle Bettger, Lawrence Tierney, Emmett Kelly, Cucciola, Antoinette Concello, James Stewart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4672/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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