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다 (2012)

2012.07.01 17:13

DJUNA 조회 수:13522


[나는 공무원이다]의 주인공 한대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마포구청 환경과에서 일하는 7급 공무원이죠. 그는 신기에 가까운 파워포인트 실력과, 딱 주변 동료들을 감동시킬 정도의 잡지식, 어떤 민원에도 흥분하지 않는 평정심의 소유자로, 이 험악한 한국사회에서 편안하기 짝이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많은 한국인 관객들은 순수한 감정으로 한대희를 부러워할 겁니다.

이런 인물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영화는 한대희 주변에 그와 정반대의 인물들을 등장시킵니다. 3X3=9라는 이름의 홍대밴드죠. 어쩌다보니 한대희는 부동산 사기를 당해 길거리로 밀려난 이 현실감각 떨어지는 젊은이들을 자기 집 지하실에 들이고, 점점 그들에 의해 일상이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와 그 전개방식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에서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영화도 그런 공식을 거의 가져옵니다. 결말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한대희처럼 자기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한 캐릭터는 갈 수 있는 영역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더 이상 넘어가면 거짓말이 됩니다.

영화의 매력은 한대희라는 캐릭터에 바탕을 둔 전체적인 태도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윤제문의 몸을 통해 완성된 이 인물은 설정만 따르면 지루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삐딱한 시니시즘과 자기만의 철학으로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는 그는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아요. 그는 남의 영향으로 쉽게 교화되는 인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재미있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한대희를 '교화'하는 이야기라면 3X3=9는 상당한 능력의 밴드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정반대입니다. 어설픈 야심은 있지만, 무능력하고 재능도 변변치 않습니다. 영화는 "언제까지 걸그룹 노래만 들을 거냐?"라고 관객들에게 묻지만, 솔직히 3X3=9의 노래를 듣느니 차라리 걸그룹의 노래를 한 번 더 듣죠. 보다 진지하게 들을 음악을 찾는다고 해도 3X3=9의 노래 말고 대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한대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영화는 교훈보다는 두 개성과 세대가 충돌하는 과정 자체에서 재미를 찾습니다. 그 충돌에서 노출되는 것은 장점보다는 약점들이죠. 3x3=9는 예상보다 더 무능하고, 단단히 감추어져 있던 한대희의 단점들도 슬슬 노출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 전 온갖 종류의 잡학사전으로 무장한 그의 지식창고의 정체가 노출되는 부분이 정말로 재미있었는데, 인터넷 시대 이전에 사춘기를 보낸 한국 사람들의 잘난 척 허세의 대부분은 한대희와 같은 방식으로 쌓은 것이기 때문이죠. 특히 그 세계 몇 대 어쩌구...

물론 교훈은 여전히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는 한대희의 성이 많은 한국관객들에게 매혹적으로 보일지라도, 삶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이죠. 단지 이 이야기는, 한대희가 어쩌다 정면대결하다 잠시나마 일부가 된 홍대문화가, 그가 택할 수 있는 수많은 탈출로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들이 꼭 삶의 목표일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동료 음악영화들과는 달리, [나는 공무원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냉정한 영화입니다.

캐릭터가 워낙 좋기 때문에, 영화의 기성품 스토리 자체가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후반에 조금 더 아이디어가 들어갔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여전히 들죠. 지금은 한 십 분 정도 길어보이는 영화입니다. 뭔가 진짜로 보여주기 전에 슬쩍 접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거꾸로 보면, 여전히 캐릭터가 아주 좋기 때문에 그 이상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라는 말이기도 하죠. (12/07/01) 

★★★

기타등등
전 여전히 원래 제목인 [위험한 흥분]이 더 좋습니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지나치게 '대세'를 따르는 거 같아서요. 하지만 더 팔기 좋은 제목이긴 하겠죠.


감독: 구자홍, 출연: 윤제문, 송하윤, 성준, 김희정, 서현정, 권수현,  다른 제목: Dangerously Excited, 위험한 흥분

IMDb http://www.imdb.com/title/tt208695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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