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디보 Il divo (2008)

2011.05.17 00:55

DJUNA 조회 수:10262


이탈리아인이나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외교 전문가가 아닌 이상,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드레오티라는 이름을 빼놓고 전후 이탈리아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54년에 내무장관이 된 이후로, 그는 총리를 세 차례나 지냈고 그 외에도 온갖 고위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치 생명이 '거의' 끝날 뻔했던 90년대 초반까지 그가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는 마피아와 연루되었을 수도 있고, 수백 명의 정적들을 암살하거나 그러려 시도했을 수도 있고, 우리가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는 이 엄청난 고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입니다. 위키에 따르면 아직도 상원의원인 모양이고, 2006년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근소한 표차이로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일생을 다룬 파올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라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전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역사학자의 지식이 아니라 매일 꼬박꼬박 신문을 읽거나 쓰는 독자나 저널리스트의 지식이요. 이 영화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역사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에요. 아마 역사책은 안드레오티의 파벌에 가담한 정치가들의 별명들까지 다 알려주지는 않을 겁니다.


이상한 건, 이런 사전 지식 없어도 [일 디보]를 재미있게 보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알고 보는 사람들은 더 재미있겠죠.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관객들 앞에는 다른 식으로 재미있는 혼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낯선 이름들과 온전히 이해되지 않은 사건들이 연대기적 순서를 무시하고 마구 튀어나오지만 그래도 이것들은 이해가 됩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다 알아먹겠어요.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종류의 소동극을 그리고 있지만 그 소동극이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대한민국의 관객들이 이 소동극을 이해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입니다. [일 디보]는 야유하고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안드레오티 파벌에 속한 일당들이 한 명씩 소개되는 장면을 보죠. 슬로우모션으로 등장하는 일당들의 이름과 직책을 별명과 함께 소개하는 이 장면은 척 봐도 갱스터 영화의 패러디입니다. 영화는 뻔뻔스럽게 [대부]나 [좋은 친구들]과 같은 갱스터 영화의 고전들을 인용하고 그들의 테크닉을 빌립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이탈리아 정치판에서 거창한 직함을 갖고 뛰는 이 양복입은 인간들이 갱스터나 다름 없는 패거리들이라고, 아니, 그냥 갱스터라고 말하죠. 패러디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경쾌하고 야비한 영화음악에서부터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인격모독적인 분장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영화적 테크닉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시청각적으로 굉장히 풍성한 영화예요. 그리고 그건 내용을 모르고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이 조롱의 중심엔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있어야 할 겁니다. 척 봐도 그래 보이잖아요. 구부정한 자세에 무표정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토니 세르빌로의 안드레오티는 딱 만화 캐릭터죠. 정말 [루니 툰]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조금은 [노스페라투]의 뱀파이어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특히 분장으로 흉내낸 괴상한 모양의 귀는 그렇습니다. 실제 안드레오티의 사진과 세르빌로의 안드레오티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이 분장 자체가 야유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세르빌로와 분장사는 안드레오티를 모사하는 게 아니라 희화화하고 있어요. [SNL]의 코미디언들처럼요.


하지만 영화 속 안드레오티는 결코 그렇게 쉽게 조롱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정치가들을 비웃는 건 쉬운 일입니다. 몇십 년 동안 그들에게 표를 몰아줄 이탈리아 유권자들을 비웃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오티를 비웃는 건 다른 일입니다. 그를 비웃으려면 우린 그가 펼친 패를 모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드레오티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그는 지적이고 교활하며 그 자신의 방식으로 현명합니다. 괜히 검은 교황이니, 베엘제붑이니, 스핑크스니 하는 별명을 달면서 지금까지 장구한 세월을 버텨온 건 아닙니다. [일 디보]는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한 몇몇 장면들을 통해 안드레오티를 읽어내려 시도하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의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일 디보]라는 영화의 거대함도 여기서 나옵니다. 아마 우리가 5,6년 뒤에 2MB를 소재로 코미디를 만든다면 그건 그냥 얄팍한 오락으로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소재가 되는 인물에 깊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린 그의 어리석음을 혐오하거나 경멸하고 아주 가끔은 동정하겠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느끼지 못하겠죠. 하지만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영화의 끊임없는 조롱을 좌절하게 할 무게감과 불가해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예술의 재료입니다. 그리고 그건 이탈리아 정계의 썩은 뿌리를 뽑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죠. (11/05/17)


★★★★


기타등등

1. 파니 아르당이 잠시 나옵니다. 


2. 물론 안드레오티도 이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안 좋아했대요. 다 안 보고 중간에 나왔다나. 하지만 어쩌나요. 결국 사람들은 이 영화로 그를 기억하게 될 겁니다.


3. 토니 세르빌로는 역시 이탈리아 사회의 부패상을 그린 [고모라]에도 나옵니다.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죠. 

 

감독: Paolo Sorrentino, 출연: Toni Servillo, Anna Bonaiuto, Giulio Bosetti, Flavio Bucci, Carlo Buccirosso, Giorgio Colangeli, Alberto Cracco, Piera Degli Esposti


IMDb http://www.imdb.com/title/tt102349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9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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