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7 23:08
마틴 캠벨의 [그린랜턴]에서 주인공인 할 조던은 용감무쌍한 테스트 파일럿. 어느 날 그는 지구에 추락한 아빈 수르라는 외계인을 만나는데, 그 외계인은 알고 봤더니 전우주를 수호하는 우주수호대의 일원이었고, 자신의 뒤를 이어 초록색 반지를 끼고 우주를 지킬 후계자를 찾는 중이었죠. 반지와 그 반지를 충전할 수 있는 초록색 랜턴을 물려받은 할은 오아 행성에서 수련을 받고 지구를 정복하려는 악당 패럴랙스와 싸우게 됩니다.
영화가 택한 이 이야기는 [그린랜턴] 시리즈의 실버 에이지 설정을 가져온 것이죠. 할 조던은 만화책 역사상 첫 번째 그린랜턴이 아니지만 (사실은 마지막 그린랜턴도 아닙니다), 그래도 다들 여기서 시작하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야 세계관도 제대로 풀리고 그렇죠.
몇 편 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전 이 시리즈의 구식 SF적인 설정을 좋아해요. [그린랜턴]은 DC 코믹스의 시리즈 중 가장 SF적인 작품이에요. 물론 지금에 와서는 엄청 시대에 뒤떨어진 설정이지만 전 그래도 이 장르화된 고풍스러운 느낌이 좋습니다. 꼭 과학적일 필요는 없어요. 그냥 SF적이기만 해도 되지요. 래리 니븐과 같은 멀쩡한 일급 SF작가가 이 시리즈에 참여했던 것도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과연 이게 영화에도 먹힐까요? 제 말은 요새 영화 말입니다. 요새 관객들에게 [그린랜턴]의 우주는 유치하고 조악해 보입니다. 영화는 이 세계를 그럴싸하게 설명하기 위해 꽤 노력하고 있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데, 왜 몇몇 외계인들이 지구인들과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죠) 그래도 이들의 세계는 [플래시 고든]식으로 구식이에요. 귀여울 수는 있지만 쿨함이 심각하게 부족한 겁니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영화는 핸디캡을 안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초록색을 잔뜩 쓸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 만화책에서라면 모를까, 영화 매체에서 이렇게 반짝거리는 초록색은 늘 불안하고 어색해 보입니다. 특히 이 영화의 그린랜턴이 사용하는 거의 [오토맨](기억하시는 분 계시려나?)스러운 액션은 아무리 특수효과를 제대로 써도 관객들이 조잡하게 볼 가능성이 크죠. 그건 악당 패럴랙스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만들어도 토요일 아침에 나오는 만화 악당처럼밖에 안 보인단 말이죠.
스토리 역시 핸디캡에 갇혀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린랜턴과 악당들은 이런 식의 수퍼영웅물 캐릭터들이 할 법한 일을 모두 하는데, 극장용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는 차별성보다 익숙함이 더 느껴질 수밖에 없죠. 위대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어쩌구저쩌구... 그런 것 있잖습니까. 이 영화에 참여한 수많은 각본가들이 주어진 재료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겠어요. 종종 그 흔적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본은 수퍼영웅물 1편의 한계에서 끝까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영화는 익숙하고 밍밍하고 느립니다.
[그린랜턴]이 소문만큼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평범하고 무난하고 조금 지루하며 종종 유치할 뿐이죠. 하지만 이런 식의 영화에서 평범하고 지루한 것은 확실하게 나쁜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일 수도 있죠. (11/06/17)
★★
기타등등
1. 2D로 봤습니다. 디지털도 아니고 그냥 필름. 근처 상영관에서는 3D로 해주는 곳이 없었거든요. 근데 저에게는 가설이 하나 있어요. 일반적인 실사영화의 경우, 3D로 영화를 본 리뷰어들이 영화에 부정적인 글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죠. 어두운 화면과 안경 착용의 부담감, 억지로 3D 효과를 느끼려는 압박감이 영화 감상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2. 영화 끝나고 2편을 염두에 둔 쿠키가 있습니다.
감독: Martin Campbell, 출연: Ryan Reynolds, Blake Lively, Peter Sarsgaard, Mark Strong, Temuera Morrison, Tim Robbins, Angela Bassett, Clancy Brown
IMDb http://www.imdb.com/title/tt11339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9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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