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2012)

2012.12.06 23:55

DJUNA 조회 수:7601


원석은 백수입니다. 이것만으로 이 인물의 소개는 끝이 납니다. 원석은 한국의 20대 남자애가 아무 의욕 없는 백수일 때 어떤 모습일지를 가장 전형적이고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영화 [반달곰]이 시작되면 원석의 백수 시절은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과 PC방을 오가며 빈둥거리는 동생을 참다 못한 원석의 누나가 원석에게 치킨집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아준 것이죠. 누나는 원석이 마음 잡으라고 비싼 파카도 하나 선물로 사줍니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물론 그건 쉽지 않습니다. 원석은 치킨집 아르바이트에서 가장 기초적인 일도 못해요. 원석이 누나와 치킨집 사장이 보는 앞에서 오토바이와 스쿠터의 시동을 걸려고 발버둥치는 장면은 보는 사람이 땀이 날 정도로 민망합니다. 지독한 기계치인 저는 더 그랬어요. 원석이 저 때 어떤 기분일지 너무나 잘 아니까.

원석은 무능력할 뿐만 아니라 게으르고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내 녀석의 자존심은 있어서 자길 대충 보는 어린 애들에게는 화도 잘 냅니다. 하지만 지독한 겁쟁이라 끝은 늘 안 좋아요. 원석이 자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PC방에서 자길 슬쩍 스치고 지나간 남자애에게 시비를 거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것들이 다 합쳐지면 관객들이 깔깔거리며 비웃으면서도 종종 감정이입해 움찔하며 "제발 이번엔 잘 좀 해라, 이 바보야!"라고 외치게 되는 인물이 만들어집니다. 한마디로 원석은 걸작이에요.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하죠. 이 걸작을 완성하는 건 원석역 배우 최경준의 연기인데, 감독의 선배인 모양이고, 선배 하는 꼴을 보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군요. 저번 GA에서 최경준은 "내가 살던 방식대로 살고 있었는데 감독이 '꼭 형이 주연을 해줬으면 하는 시나리오 있다'고 말해서 하게 되었다"라고 했다나요...

저보다 훨씬 사람이 좋은 변영주 감독은 원석에게서 성장의 가능성과 숨겨진 죄책감을 읽더군요. 음, 숨겨진 죄책감은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암만 봐도 원석이 앞으로도 저렇게 주변 사람들을 미치게 하면서 계속 잉여로 살 것 같아요. 제 의견이 더 믿을만할 겁니다. 게으름뱅이가 게으름뱅이를 더 잘 알아보는 법. 그렇다고 해서 제가 [반달곰]이라는 영화를 변영주 감독보다 낮추어 보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만. (12/12/06) 

★★★☆

기타등등
서독제에서 봤습니다.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두 편 정도 챙길 시간이 나오더군요. 물론 제가 부지런을 조금 더 떨었다면 몇 편 더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감독: 이정홍, 배우: 최경준, 다른 제목: No Cave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5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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