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8 18:31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무대로 하는 호러영화라는 점에서 [엘리베이터]는 종종 [데블]과 비교됩니다. 하지만 이 점만 빼면 둘은 닮은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보고 있으면, 참 용케 피해간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물론 [엘리베이터]가 [데블]에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별로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무대로 한 호러 스토리는 흔하잖아요. 영화로 만들기 그리 쉬운 재료는 아니지만.
오컬트/미스터리인 [데블]과는 달리 [엘리베이터]는 정통 심리 서스펜스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세 사람을 소개받습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자살한 의사 선생, 여자친구와 함께 파리로 달아날 계획을 세운 청년, 할머니가 교통사고 때문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여대생. 그리고 이들이 탄 엘리베이터는 중간에 고장 나 버립니다.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모두 여행을 떠나고 없고, 외부와 연락도 안 됩니다.
영화는 서술형식의 트릭을 쓰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종종 과거로 돌아가 이들의 사연을 조금씩 소개하지요. 그리고 이들 중 한 명은 다른 두 명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보도 자료가 노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 중반까지 그 비밀을 묻어두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게 무엇인지, 그게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제한된 공간과 싸웁니다. 전 그 싸움의 방법이 그리 공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플래시백은 영화가 의도한 폐소공포증을 약화시킵니다. 반전 역시 그냥 이렇게 순서를 바꾸어 생기 없이 푸는 대신 엘리베이터 내부의 드라마를 통해 폭로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고요. 주인공들의 비밀이 모두 폭로되는 중반 이후로는 사건의 변수가 너무 적어서, 악당 한 명의 난동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엘리베이터]와 [데블] 둘을 비교한다면 전 [데블]에 한 표를 주겠습니다. [데블]도 평범한 영화였지만 그래도 주어진 재료를 훨씬 야무지게 썼지요. [엘리베이터]는 사전에 세워놓은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의존하느라 미스터리와 드라마의 가능성을 많이 놓칩니다. (11/01/08)
★★
기타등등
1. 여자친구와 달아나려는 청년 역의 배우는 [소셜 네트워크]의 윙클보스 형제 역을 맡은 아니 해머입니다.
2. 도대체 엘리베이터는 몇 층에서 멎은 거랍니까? 영화를 보면 마치 마천루 꼭대기에서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감독: Rigoberto Castañeda, 출연: Amber Tamblyn, Aidan Gillen, Armie Hammer, Katie Stuart
IMDb http://www.imdb.com/title/tt08446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6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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