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천사 Street Angel (1928)

2010.03.01 17:53

DJUNA 조회 수:6158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리의 천사]의 무대는 이탈리아 나폴리.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아일랜드 작가 몽크튼 호프의 소설 [크리스틸린다]의 무대는 그냥 영국이라고 합니다. 하긴 무성영화 세계는 오페라 무대와 같아서 어떤 이국적인 배경도 당연시되지요. 심지어 너무나도 미국인처럼 생긴 자넷 게이너나 찰스 패럴이 주연을 맡아도 말입니다. 보재기도 나폴리라는 배경을 이탈리아 요리나 이탈리아 패션을 고르듯 골랐겠지요.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한다면, 어쩌다 어둠의 길로 떨어진 착한 여자와 그 여자에게 얼토당토 않은 환상을 품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끔찍하지만 영화는 어떻게든 이 둘에게 해피엔딩을 제공해줄 방법을 찾습니다.

 

주인공 안젤라는 죽어가는 엄마의 약값을 벌기 위해 소매치기를 시도했다가 잡힙니다. 1년형을 받은 그녀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탈출하지만 이미 엄마는 죽어버렸죠. 서커스 단에 들어가 곡예사가 된 안젤라는 떠돌이 화가 지노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지노는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나폴리로 가려고 하고 안젤라는 걱정하면서도 그를 따라가요. 이럼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안젤라의 얼굴을 알아본 경찰관이 있었죠. 안젤라는 벽화 일을 따낸 지노의 미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말없이 그의 뒤를 떠나지만, 지노는 그녀가 사라지자 붕괴해버립니다.

 

현대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두 주인공들의 행동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안젤라의 첫 번째 범죄는 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이 사람이 선택하는 행동은 모두 최악이에요.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을 고향에 제 발로 돌아온 것부터 실수였지만, 자기가 없으면 남자친구가 망가질 거라고 걱정하면서 말 없이 그의 곁을 떠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또 뭐랍니까? 하지만 진짜로 최악은 지노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구식 여성숭배자/혐오자예요. 이 인간에게 여자들은 성녀 아니면 창녀뿐입니다. 중간이 존재하지 않아요. 서커스 단 곡예사 출신의 여자를 성녀처럼 떠받들다가 나중에 그 여자가 매매춘과 소매치기로 (전자에 방점이 꽝꽝꽝 찍힙니다) 감옥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자 당장 살의로 부글부글 끓어요. 정말 싫지 않습니까?

 

이런 캐릭터는 배우들에게도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안젤라를 연기한 자넷 게이너의 경우, 주인공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프리마돈나 연기할 거리가 많아서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짜냈어요. 하지만 지노를 연기한 찰스 패럴은 아무리 봐도 예뻐해줄 구석이 없습니다. 보재기 영화에 출연한 그의 작품들을 네 편 연속으로 보니, 이 사람이 조금 캐릭터를 타는 배우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결말은 환상적입니다. 안젤라의 정체를 안 지노는 안개 낀 부둣가를 걸어다가 출옥한 안젤라를 만납니다. 그녀를 잡아 죽이려고 작정한 지노의 모습은 [노스페라투]에서 튀어나온 뱀파이어와 같습니다. 그런데 안젤라를 죽이려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성당에 걸린 성녀의 얼굴이 안젤라와 똑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려 싼 값에 팔아넘긴 안젤라의 초상화를 모델로 만든 위작이었지만 그는 그런 걸 알 리가 없죠. 갑작스러운 신성한 개입에 그는 말없이 굴복하고, 그건 사정을 아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전 그 뒤로도 저런 재수 없는 남자를 만난 안젤라의 미래가 심하게 걱정되었지만 말입니다. (10/03/01)

 

★★★

 

기타등등

완전한 무성영화는 아닙니다. 당시엔 최첨단 기술이었던 무비톤으로 음악과 효과음이 입혀졌죠. 몇몇 장면들, 특히 가사가 붙은 이탈리아 노래들이 깔리는 장면들은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한국 드라마 중간중간에 어울리지 않는 신파 주제가가 나와 맥을 끊어놓는 것이랑 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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