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살인자 (2010)

2010.03.25 22:11

DJUNA 조회 수:11003

 

[반가운 살인자]의 원작은 2005년에 발표된 서미애의 동명 추리 단편. 비 오는 목요일마다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연구하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업에서 실패한 뒤 한동안 노숙자로 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백수로, 살인마를 추적해야 할 자기만의 이유가 있죠.

 

영화로 만들기 나쁜 작품은 아닙니다. 단지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에 맞죠. 극장용 장편영화로 만들려면 공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새 이야기가 추가되고 결말에도 다른 의미가 부여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원작에서는 적절한 때에 딱 맞추어 찾아왔던 결말이 영화에서는 맥이 풀리게 됩니다. 고로 저는 그 동안 각본가들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그 결과물은 용납하기 힘듭니다만.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장르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원작은 어둡고 우울한 살인 이야기지만,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네,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코미디인 것입니다. 백수 이야기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영화는 여기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건성으로 직장에 다니는 형사 캐릭터를 만들어 그를 또다른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연쇄살인마 이야기로도 코미디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전 이를 부정할 생각이 없어요. 이야기라는 건 종종 엉뚱한 곳에서 활로를 찾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여섯 명이나 되는 여자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세계의 이야기를 그리려면 그 희생자들에게 약간의 감정은 보여주는 것이 이야기꾼의 예의입니다. 그게 연민이나 동정, 공포라면 좋겠지만 다른 것이어도 상관없어요. 최소한의 관심은 필수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무도 희생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배경인 것입니다. 그것도 코미디 배경. 전 이 태도가 혐오스럽습니다.

 

같은 이유로 전 이 영화에서 백수 영석을 밀어내고 제1 주인공 행세를 하는 형사 정민도 불쾌합니다. 전 그의 사생활이나 직장관, 미래희망에는 관심 없습니다. 단지 연쇄살인마가 주변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면 그는 형사로서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여자들은 길가에 버려진 깡통 보듯 하고, 오로지 경찰 홈페이지에 자신을 경범죄로 신고한 영석에게 복수하는 데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각본가들은 그를 코미디 주인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는 시작부터 함량미달입니다.

 

영화는 짜증날 정도로 지루합니다. 아까 전 이 영화가 희생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영화는 연쇄살인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한 시간 넘는 기간 동안 연쇄살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아요. 대신 영화는 백수 영석과 형사 정민, 그리고 백수 영석의 딸인 하린의 일상을 따라가지요. 전 조중일보와 관련된 몇몇 농담에 낄낄거렸지만 나머지는 정말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시체들이 뒹구는 거리에서 재미없는 유치 개그를 성의 없이 중얼거리는 코미디언들을 상상해보세요.

 

중반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영화는 드디어 연쇄살인마 잡기에 뛰어듭니다. 그 동안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서미애의 원작이 살아나는 것도 여기서부터죠. 하지만 원작의 힘은 찾아볼 수도 없으니, 아까도 말했지만 이 이야기는 단편에서 가장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동안 딴 이야기를 하다가 원래 이야기로 뛰어든다고 몰입도가 살아나는 건 아니죠. 게다가 원래 그대로의 모습도 아니에요. 형사 정민 때문에 더 산만해졌죠. 정말 쓸모없는 캐릭터예요.

 

도대체, 누가, 왜, 어떤 생각으로 서미애의 원작을 사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코미디를 만들 생각이었는지, 해도 해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코미디로 방향을 바꾼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서미애 작가라면 영화를 보고 이렇게 한마디 했을 것 같습니다. "내 소설 내 놔라, 이 빵꾸똥꾸들아!!!!!!!" (10/03/25)

 

★☆

 

기타등등

감독과 주연배우 이름이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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