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킴 노박과 제임스 스튜어트는 영화 두 편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5월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전설적인 영화 [현기증]이 나왔어요. 11월에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판타지인 리처드 퀸의 [종, 책 그리고 촛불]이 나왔고요. 이 두 편을 연달아 본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하나는 알아요. 당시 관객들 중 상당수는 제임스 스튜어트가 지나치게 늙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튜어트는 [종, 책 그리고 촛불] 촬영장에서 50살 생일을 맞았어요. 그 정도면 연애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 못 나올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요. 하지만 상대역이 20대 중반의 킴 노박이라면? 도둑놈이죠. 스튜어트도 그렇다고 생각했고 이후로는 주로 나이 든 '아버지' 역할로 넘어갔습니다. [종, 책 그리고 촛불]은 스튜어트의 마지막 로맨스 영화예요.

[종, 책 그리고 촛불]의 원작은 존 반 드루텐의 1950년작 브로드웨이 연극입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엔드 초연 때는 렉스 해리슨과 릴리 팔머가 주연이었대요. 이 연극의 제작자가 데이빗 O. 셀즈닉의 전처인 아이린 셀즈닉이었는데, 셀즈닉은 1953년에 두 번째 아내인 제니퍼 존스를 염두에 두고 판권을 샀습니다. 하지만 계속 일이 뒤로 밀려서 1958년에야 지금의 킴 노박과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의 영화로 완성되었지요.

영화의 제목 [종, 책 그리고 촛불]은 엑소시즘 주문에서 따온 것으로 중반에 대사로 한 번 설명이 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길리언은 마녀이고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수상쩍은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집에서는 역시 마녀인 이모 퀴니와 샴 고양이 파이와켓이 살지요. 근처에 있는 조디악 클럽에서는 역시 마법을 쓰는 (이 영화에서는 마법을 쓰는 여자인 witch와 마법을 쓰는 남자 warlock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남동생 니키가 봉고를 연주하고 있고요. 거기엔 또 비앙카 드 패스라는 마녀가 상시 거주하고 있고요.

영화는 길리언과 막 같은 건물에 이사 온 출판업자인 셰프의 연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셰프의 약혼녀인 멀은 길리언과 대학시절 앙숙이었고 길리언은 두 사람의 인생에 개입합니다. 주문을 걸어 셰프가 자신을 사랑하게 마법을 건 거죠. 당연히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고, 후반에 이 둘의 관계는 정상적인 평등성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서 원작과 영화는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클리셰를 가져옵니다. 사랑에 빠진 마녀는 마법의 힘을 잃는다는 거죠. 전 이게 정말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반 드루텐은 이 법칙이 warlock에게도 적용되는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엄청나게 웃기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 웃음 상당수는 어이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는 제임스 스튜어트 캐릭터의 어리바리함에서 나오고요. 좀 당하는 것을 구경하는 게 즐거운 남자입니다. 게다가 주변의 조연 캐릭터가 상당히 컬러풀한 편이죠. 허마이오니 긴골드, 엘사 란체스터 그리고 잭 레몬. 이 사람들 사이에선 스튜어트의 '보통 남자'는 더 허약해 보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 이 영화는 겉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자 존 반 드루텐이 게이이고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절친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뮤지컬 [카바레]의 원작이 이셔우드의 소설을 반 드루텐이 각색한 [나는 카메라다]입니다.) 비밀은 자동적으로 풀립니다. 특별한 비밀을 갖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마녀들이 무엇의 은유겠어요. 조디악 클럽은 그냥 뉴욕 게이바의 은유이고, 이들 사이에 낀 유일한 남자인 잭 레몬의 캐릭터 니키가 길리언이 마법으로 불러온 [멕시코의 마법]의 뉴욕의 저자와 함께 뉴욕의 마법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하는 부분에서, 영화는 그냥 위장을 벗어버린 거 같아 보입니다. 아, 그리고 이 서브텍스트는 마녀라는 은유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길리언을 레즈비언의 은유로 보면 영화는 동성애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죠.

마녀와 평범한 남자의 연애를 그린 영화는 [종, 책 그리고 촛불]이 처음이 아니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르네 클레르의 할리우드 영화 [나는 마녀와 결혼했다]가 있습니다. 하지만 히트 텔레비전 시리즈 [아내는 요술쟁이]는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게 맞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작품도 시트콤 리메이크 시도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파일럿만 만들어졌대요. (23/12/28)

★★★

기타등등
영화에서는 고양이 파이와켓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연극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양이와 연극을 하는 건 그냥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감독: Richard Quine,, 배우: James Stewart, Kim Novak, Jack Lemmon, Ernie Kovacs, Hermione Gingold, Elsa Lanchester, Janice Rule, 다른 제목: 사랑의 비약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1406/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3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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