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1 01:03
제가 송일곤이라도 영화 스타일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이 나쁘거나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거의 없고, 아트하우스 영화감독으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수준은 아니죠. 이렇게 되면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 뭔가가 뭔지는 몰라도.
송일곤이 택한 길은 한효주와 소지섭이라는 일급 스타들이 등장하는 노골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트하우스 영화 티를 팍팍 내는 영화들을 만들던 사람이 이를 악물고 통속물의 바닥까지 뛰어든 거죠. [오직 그대만]이라는 제목만 들어도 감독의 결의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영화의 흥행결과를 예측하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성공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영화의 질만 따진다면 [오직 그대만]은 그냥 계산착오입니다. 지금까지 송일곤은 다큐멘터리에서부터 호러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영화들을 만들어왔지만, [오직 그대만]만큼 심심한 영화를 만든 적이 없어요.
영화의 내용은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와 많이 닮았습니다. 직접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요. 전직 권투선수가 시력을 잃어가는 젊은 여자를 만납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남자는 다시 권투를 시작해요. 그러다가 남자는 돈 3천만원만 있다면 여자주인공이 개안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이야기의 통속성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던 [시티 라이트]만 해도 걸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오직 그대만]에는 채플린의 영화가 가진 진실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연속극만큼의 진실성도 느껴지지 않고요. 느껴지는 건 송일곤이 이 세계에서 죽어라고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소지섭 캐릭터가 한효주 캐릭터를 위해 하기 싫은 게임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요.
그 때문에 영화의 신파는 경직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장애 소재 신파 멜로, 격투기, 소지섭 복근 보여주기, 골 때리는 우연의 일치, 귀여운 애완동물들, 중간에 유행가 배경음악 깔아주기 같은 것들은 순전히 의무감 때문에 열심히 만들어 넣은 거죠. 통속물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니까. 만드는 사람이 소재를 존중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맘 편하게 따라가겠어요. 특히 질질 끄는 결말은 거의 사보타지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주인공들도 그리 잘 만들어진 사람들은 아닙니다. 한효주의 캐릭터는 장애를 청순가련미인들의 악세서리처럼 끌고 다닙니다. 소지섭의 자기희생에는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의 토핑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이들 캐릭터는 배우들에게도 안 좋습니다. 특히 소지섭에게는요.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부터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는 그리 좋은 연애물 배우는 아니에요. 그러기엔 지나치게 자기도취적입니다. 슬슬 벗어날 때가 되었고 당사자도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여전히 이러는 걸 보면 이미지 소비의 매커니즘이라는 게 무섭죠.
저에게 [오직 그대만]의 타이밍은 최악이었습니다. 전 올해 들어 시각장애인 여성이 주인공인 [블라인드]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게임을 하는 스포츠맨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투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오직 그대만]보다 나았어요. 둘 다 소재를 진지하게 다루는 게 보였고요. [오직 그대만]처럼 오기가 서린 흉내는 아니었단 말입니다.
(11/10/21)
★★
기타등등
소지섭 캐릭터가 애완동물을 다루는 거 보면 많이 무섭습니다. 시각장애가 있고 혼자 사는 젊은 여자에게 선물이라고 훈련도 안 된 골든 레트리버를 안겨주는 게 말이 되는 행동입니까? 그리고 나중에 여자가 병원에 입원하고 자기도 떠날 때엔 개와 자기가 기르는 거북이를 어디다 맡길 생각 따윈 하지도 않는 것 같더군요. 스토리상 별 일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보면서 조마조마했습니다.
감독: 송일곤, 출연: 한효주, 소지섭, 강신일, 박철민, 조성하, 신범식, 위승, 진구, 다른 제목: Always
IMDb http://www.imdb.com/title/tt20821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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