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거처 Domicile conjugal (1970)

2023.11.28 23:11

DJUNA 조회 수:1101


[앙투안 두아넬 연대기]는 내리막의 역사라고 언젠가 제가 말한 적 있습니다. 일단 1편인 [400번의 구타]가 평생 단 한 번, 20세기 영화 역사에서도 단 한 번밖에 나올 수 없는 걸작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영화는 아무래도 그보다 못할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서 영화의 톤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풍성한 성장물이었던 작품이 조금씩 가벼운 프랑스 코미디가 됐죠. 게다가 위대한 어린이 캐릭터였던 두아넬이 점점 '프랑스 남자'가 되어가고 있기도 했고요.

[부부의 거처]의 앙투안 두아넬은 아마 이 시리즈에서 가장 밉상일 것입니다. [400번의 구타]에서 두아넬이 한심하게 굴면 애니까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앙투안과 콜레트]의 청소년 두아넬도 이해가 가능해요. 막 불명예 제대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도둑맞은 키스]의 20대 남자애도 이해 못할 건 없어요. 하지만 [부부의 거처]에서 두아넬은 이미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심지어 영화 중간에 아빠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심한 짓을 금지할 때가 된 거죠. 그런데도 두아넬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합니다. [사랑의 도피] 때가 더 밉상이 아니냐고요? 근데 그 작품은 온전한 하나의 영화라는 느낌은 안 들어서요.

이 영화에 대한 제 인상이 아주 좋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아무래도 더 좋은 조건에서 보기도 했죠.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앙투안 두아넬을 좋게 봐줄 생각 자체를 버렸던 거죠. 그래도 됐습니다. 두아넬은 프랑수아 트뤼포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이고 원래 예술가들은 자기를 모델로 한 인물에겐 가혹한 편이거든요. 이 못남에는 나름 의미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드디어 앙투안 두아넬이 [도둑맞은 키스] 때부터 사귀었던 크리스틴과 결혼했다는 걸 알리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정된 직장은 없고 바이올린 교사인 아내에게 얹혀 지내고 있지요. 운좋게 새 직장을 얻긴 하는데, 이번엔 직장 상사의 일본인 고객의 딸 교코에게 반해 버립니다. 막 크리스틴이 아들을 낳았는데도요.

줄거리만 봐도 벌써 밉상이죠. 하지만 실제로 보면 더 얄밉습니다. 크리스틴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넘어가는 것도 얄밉고, 그 뒤에 교코에게 하는 짓은 더 얄밉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본, 그러니까 아시아를 대하는 트뤼포의 태도 자체가 얄밉기도 해요. 그러다 우물쭈물하는 척하면서 매매춘업소에 들어가는 건 더 얄밉고. 그러면서 이 친구는 드디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여기엔 당연히 글쟁이의 얄미움이 추가되지요. 총체적으로 자신의 못남을 전시하는 트뤼포의 얄미움도 추가 되는데... 정말 끝이 없군요.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부부의 거처]는 상당히 재미있는 코미디입니다. 일단 프랑스 코미디를 종종 망치는 늘어짐이나 변명 없이 날카롭고 단호하며 리듬이 좋아요. 두아넬 부부가 살고 있는 동네의 묘사도 좋은데, 사실 말로 설명하면 별 게 아닌 것 같은 에피소드나 캐릭터들도 트뤼포가 끌어가는 코미디의 리듬 안에서는 여벌의 의미와 존재감을 부여받습니다. 트뤼포의 코미디가 이만큼이나 장르 코미디로 단단한 적이 있었나 싶어요.

하지만 여전히 중심엔 앙투안 두아넬이 있죠. 생각해 보면 [400번의 구타]의 두아넬이 [부부의 거처]의 두아넬이 된 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 같습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종종 과대평가되는 구석이 있는데, 원래 사람은 어린시절의 가능성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었던가요. 두아넬이 주인공인 이후 영화들이 첫 영화의 '위대함'을 잃었다고 굳이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그건 삶에 대한 정직한 기술이었으니까. (23/11/28)

★★★☆

기타등등
크리스틴 역이 클로드 자드는 실제로 트뤼포와 사귀었고 결혼 직전까지 갔었죠.


감독: François Truffaut, 배우: Jean-Pierre Léaud, Claude Jade, Hiroko Berghauer, Daniel Ceccaldi, Claire Duhamel, 다른 제목: Bed & Board, 부부생활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65651/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6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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