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명탐정 Murder by Death (1976)

2023.12.30 23:57

DJUNA 조회 수:1435


닐 사이먼이 추리소설 패러디에 꽃혔던 때가 있었어요. 감독인 로버트 무어와 함께 영화 두 편을 만들었죠. [5인의 명탐정]과 [싸구려 탐정]. [5인의 명탐정] 쪽이 조금 더 유명합니다. 전 아마 주말 오후에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봤던 거 같아요.

라이오넬 트웨인 (모형 기차 회사인 라이오넬 트레인을 비튼 이름이겠죠)이라는 부자가 자신의 외딴 별장에 명탐정들을 초대하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이들이 저택에 도착해 만찬에 도착할 때까지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 정도는 흐르는 거 같아요. 이 사람들은 모두 고전 추리소설 또는 그 소설을 각색한 추리영화 캐릭터의 캐리커처입니다. 영국인 부부 딕과 도라 찰스턴은 대실 해밋의 닉과 노라 찰스, 샌프란시스코의 샘 다이아몬드는 역시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 시드니 웡은 얼 더 비거스의 찰리 첸, 밀로 페리에와 제시카 마블은 크리스티의 프와로와 미스 마플. 영화 중반이 되면 트웨인이 등장해서 12시에 일어날 살인사건을 해결하면 백만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정말 12시에 살인이 일어나요.

진지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목표는 처음부터 여러 추리소설의 관습을 놀려먹는 것인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논리를 위반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클라이맥스와 결말은 그냥 난장판이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영화에서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는 관객은 없거나 극소수일 텐데,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목표니까요.

그런데 그게 재미있나? 글쎄요.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는 그 옛날 더빙판 영화를 봤을 때보다도 덜 재미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재미있어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나름 논리를 중시하는 장르를 놀려먹을 때 그 표면의 부조리함만을 공격하는 건 그렇게 효과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논리는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게 뜬금없어서 명탐정들을 앞에 데려다 놓고 놀려먹는다는 목표를 달성한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몇몇 농담들은 그냥 불쾌한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갖고 하는 농담은 대놓고 무례한데, 그렇게 한 농담이 그 무례함을 넘을만큼 재미있었느냐? 그것도 아닌 거 같아요. 더 신경 쓰이는 건 시드니 웡과 관련된 모든 농담이죠. 찰리 첸은 분장한 백인 남자가 동양인인 척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으니, 영화가 패러디할 때 그것까지 끌어오는 건 논리적으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자체가 원본보다 더 심한 인종차별적인 농담 같고 여기엔 출구가 안 보입니다.

가장 큰 재미는 배우 구경인 영화입니다. 알렉 기네스, 데이빗 니븐, 매기 스미스, 엘사 란체스터, 피터 포크 같은 배우들이 나와서 요란하고 과시적인 연기를 하고 그 중 몇 개는 재미있습니다. 후반부엔 특히 시선을 끄는 배우가 있죠. 그리고 이 영화는 트루먼 캐포티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라이오넬 트웨인으로 나와요. 내레이터나 카메오가 아닌 역으로는 이 영화가 아마 유일할 거예요. (23/12/30)

★★☆

기타등등
오프닝의 일러스트는 찰스 아담스의 것입니다.

전엔 몰랐던 것. 페리에의 하인으로 나오는 배우가 제임스 크롬웰. 영화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감독: Robert Moore, 배우: Eileen Brennan, Truman Capote, James Coco, Peter Falk, Alec Guinness, Elsa Lanchester, David Niven, Peter Sellers, Maggie Smith, Nancy Walker, Estelle Winwood, 다른 제목: 5인의 탐정가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4937/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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