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루이 말이 1958년에 만든 프랑스 필름 누아르 영화지요. 말의 첫 장편영화고요. 원작은 불가리아 출신 작가 노엘 칼레프의 동명 소설인데, 영화와 소설은 기본 설정만 빼면 내용이 많이 달라요. 그 기본 설정은 무엇인가. 자살로 위장한 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증거를 남긴 거 같아서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그만 직원이 전기를 내려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고 만다는 거죠. 그 때 어떤 불량커플이 남자의 차를 훔쳐타고 돌아다니다 그만 외국인 커플을 살해하게 됩니다. 다음 날, 간신히 빠져나온 남자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알리바이를 입증하려면 자신이 그날 밤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었다는 걸 말해야 해요.

소설과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일단 영화는 플로랑스와 쥘리앵이라는 두 불륜 커플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쥘리앵은 플로랑스의 남편인 무기상 밑에서 일해요. 쥘리앵은 밧줄을 타고 남편 사무실로 올라가 자살로 위장하고 일종의 밀실을 만듭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플로랑스는 남자가 오지 않는 파리의 밤거리를 떠돕니다. 나중에 쥘리앵이 누명을 쓰자 그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서고요.

그런데 소설에서는 플로랑스에 해당되는 인물인 제네비에브의 비중이 영화보다 훨씬 작습니다. 제네비에브의 남편인 쥘리앵이 살해하려는 인물은 같은 건물에 사는 고리대금업자고요. 살인은 쥘리앵의 단독범행이고요. 소설은 거의 잔혹한 코미디에 가까워요. 어쩌다 연속적으로 발생한 우연의 일치 때문에 쥘리앵은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심지어 자신의 진짜 살인을 고백해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나은가. 일단 원작이 추리소설로는 더 치밀합니다. 제목도 더 잘 들어맞고요. 영화는 소설과 비교하면 많이 헐렁하고 구멍투성이지요. 보다 보면 '왜 이렇게 흘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왜 저 사람들은 굳이 사진을 현상했지? 저 카메라 안의 사진은 누가 찍은 거지? 암만 봐도 타이머가 들어갈 수 있는 기계가 아닌데? 저 사진들이 과연 공동범행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저렇게 포기하면 아깝지 않나?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렬한 서스펜스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일단 잔 모로가 연기하는 여자주인공의 비중을 늘리는 순간, 영화가 어마어마한 시네마의 퀄리티를 얻게 되었단 말이죠. 원작의 캐릭터들은 재미있게 만들어졌지만 특별히 매력적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잔 모로의 클로즈업으로 나오는 도입부부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 배우를 통해 앞으로 아주 특별하고 매력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소설도 재미있지만 파리 밤거리의 잔 모로, 그리고 이 배우를 담아내는 누벨 바그 시대의 그 신선한 시선과는 경쟁이 조금 어렵지요.

영화는 1950년대 말이라는 시대를 보여주는 창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훔친 커플은 노엘 칼레프와 루이 말이 각각 전후 세대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주죠. 소설과 영화의 묘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아무래도 비슷한 또래인 말보다는 연장자인 칼레프 쪽이 더 냉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보면 이런 부류의 젊은 남자들은 시대의 성격만 조금 다를 뿐, 어디 세대에나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시대의 풍경은 소설 속 보다 영화 속 쥘리앵이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인도차이나 전쟁 경험이 있고 무기상 밑에서 일하는 전직군인이니까요.

물론 음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파리에 있을 때 러프 컷을 보면서 즉흥 연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하죠. 소문에 따르면 연주 사이사이에 옆에 있던 잔 모로, 루이 말과 샴페인을 마셨다고 하던데. 지금은 억지로 흉내내려 해도 잘 안 될 그 특유의 쿨함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굳이 그 시절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23/11/25)

★★★☆

기타등등
1. 커플이 살해한 독일인 부부가 탄 차는 바로 그 전설의 메르세데스-벤츠 300SL W198입니다. 쥘리앵이 도둑맞은 차는 1952년 쉐보레 스타일라인 컨버터블.

2. 2010년에 일본에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3. 소설은 동서 미스터리 북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악마 같은 여자] 뒤에 있기 때문에 제목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어요. 끔찍한 옛날 번역이니 각오하시고.


감독: Louis Malle, 배우: Jeanne Moreau, Maurice Ronet, Georges Poujouly, Yori Bertin, Jean Wall, Iván Petrovich, Félix Marten, Lino Ventura, 다른 제목: Elevator to the Gallows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1378/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933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