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꼬 (2012)

2012.12.03 23:15

DJUNA 조회 수:14028


[반창꼬]의 주인공 미수는 위태로운 인물입니다. 보도자료에는 '단 한번의 실수로 위기에 처한 의사'라고 되어있더군요. 완곡어법입니다. 오진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대충 진찰하고, 보호자인 남편에게 악담을 퍼붓고, 그 때문에 병원을 나간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라면 심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물들도 영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주인공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어울리는 장르가 있습니다. 심각한 의학 드라마나 서스펜스물 같은 거요. 하지만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다면? 어떻게 봐도 이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주저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 과정을 보시죠. 저 사건으로 고소당해 의사직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미수는 환자의 남편이 당시 구조대원 강일을 구타한 걸 알아내고 강일에게 남편을 고소하라고 요구합니다. 그게 먹히지 않자, 꼬셔서 말을 듣게 하겠다고 119 구조대 의용대원으로 들어가요. 물론 그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나 곧 홀아비가 될 남편에게 티끌만큼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그 뒤로 영화는 진짜로 미수와 강일의 알콩달콩 러브 모드로 갑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에서 미수를 연기한 한효주는 정말 귀엽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로맨틱 코미디 모드가 마땅히 참회와 속죄로 이어져야 할 후반 드라마와 어울립니까? 과연 여러분은 이런 인물에게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겠어요? 전 어렵더군요. 영화를 보는 동안 전 계속 배우 한효주와 캐릭터 미수가 분리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좋은 일은 아니죠.

미수와 강일의 로맨틱 코미디를 제외하면,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은 소방 구조대의 일상을 담습니다. 어떤 것은 심각하고 어떤 것은 가볍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소방 구조대원들의 일상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보다는 일종의 홍보물처럼 보입니다. 종종 [서서 자는 나무]가 생각나더군요. 소방 구조대라는 직업은 꼭 이렇게 뻣뻣하게만 소비되어야 하는 걸까요. 이런 식의 의무감을 떨어내더라도 같은 이야기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습니다.

뻣뻣한 건 소방 구조대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로맨스도 뻣뻣하긴 마찬가지에요. 특히 음악부터가 90년대 미니 시리즈 엔딩을 연상시키는 후반부는 이게 뭔가 싶습니다. 이들은 모두 구닥다리 기성품이에요. 영화를 보는 동안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대신 작가가 사지선다형의 답 중 어떤 것을 택할까 궁금해지는. 물론 미수가 진짜로 밟아야 할 드라마는 그 중간에 얼렁뚱땅 넘어가고 말죠. (12/12/03) 

★★

기타등등
감독 말에 따르면 [반창고] 대신 [반창꼬]를 제목으로 쓴 건 어감이 귀엽고 검색하기 쉬워서라더군요. 이해가 안 갑니다. 

감독: 정기훈, 배우: 한효주, 고수, 마동석, 김성오, 쥬니, 진서연,  다른 제목: Love 911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Love_911.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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