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취미생활 (2023)

2023.09.04 14:46

DJUNA 조회 수:1402


[그녀의 취미생활]은 서미애 작가의 동명 단편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영화 보기 전에 읽으려고 했는데 이 단편을 각색한 웹툰만 있고 단편은 구할 수 없더군요. 트위터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내년에 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마도 단편집이겠죠. 이전에 영한대역 단행본이 한 번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감독인 하명미는 이 영화가 첫 장편인데,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각색했고 [위험한 상견례]의 공동각본가였으며 [빛나는 순간]의 프로듀서였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정인입니다. 같은 동네 출신인 남자와 결혼해서 서울로 올라갔는데, 남편의 폭력 떄문에 이혼하고 다시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다음 날 죽었고, 정인은 마을 이웃들의 밭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혜정이라는 도시 여자가 이사와요. 직업도, 남편도 없는 이 여자는 시골마을 사람들의 규칙을 모두 위반해가며 살아가는데, 정인은 이 사람에게 은근히 끌리기 시작해요. 그리고 영화를 몇 분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혜정이 위반하는 건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습관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정인도 슬슬 혜정에게 물들기 시작하지요.

이 영화가 그린 시골마을은 폐쇄적인 소규모 공동체의 나쁜 점만 갖고 있는 곳입니다. 적어도 정인에겐 그래요. 마을 사람들 중 영화가 그럭저럭 긍정적으로 그리는 사람은 베트남에서 온 흐엉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이 집단의 여성혐오적인 특성입니다.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폭력은 묵인되고 상당수의 여자들이 여기에 동조하지요. 정인의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재결합을 응원하는 장면에선 솔직히 욕지기가 나옵니다.

정인과 마을 사람들이 현실 기반의 인물이라면 혜정은 철저하게 장르적 존재입니다.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존재하고 관습과 법에서 자유롭지요. 이건 이 사람이 살인자라는 뜻입니다.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혜정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이 사람이 정인 주변의 불쾌한 사람들을 처리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정인이 혜정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운데, 이 세계의 문제가 합법적으로 해결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이니까요.

관객들이 바라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정인과 혜정을 엮는 것이죠. 영화는 동성애를 직접 그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동성애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을 합니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캐릭터의 관계성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해요. 당연히 두 캐릭터 사이엔 성적 긴장감이 도는데, 무게중심은 노골적으로 이웃집 젊은 여자에게 플러팅을 하는 혜정보다는 그 사람의 시선에 끊임없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인에게 쏠려 있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18분 정도로 짧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페이스가 좋은 편이라 지루한 느낌은 없습니다. 단지 저는 혜정과 정인이 저지르는 일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끝내버리면 아무래도 경찰이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현실적인 디테일보다는 폭력적인 카타르시스가 더 중요한 영화이긴 한데, 전 그래도 주인공들이 안전을 보장받았으면 합니다. (23/09/04)

★★★

기타등등
정인을 연기한 정이서는 연기도, 외모도 다 좋은데, 시골에서 밭일하는 사람치고는 피부가 너무 맑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혜정 역의 김혜나와의 콘트라스트도 고려했겠죠. 우선순위는 임의적이니까요.


감독: 하명미, 배우: 정이서, 김혜나, 우지현, 황정남, 조정근, 박혜진, 김연재, 임새벽, 오정민, 다른 제목: Her Hobby

Hancinema https://www.hancinema.net/korean_movie_Her_Hobby.php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7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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