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6 01:05
레자 카리미의 [킬러]는 이란에서 온 추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이란에 이런 장르 영화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몇 십년 동안 제가 본 이란 영화들은 모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스타일의 예술영화들이니까요. 대부분 좋은 영화들이었고, 그 중 몇 편은 걸작이었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만 한 나라의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황은 그리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이란 영화감독이라면, 키아로스타미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영화는 8,90년대에 유행했던 할리우드 사이코 스릴러처럼 시작됩니다. 순진무구한 얼굴의 범죄 심리학자 남자 주인공에게 옛 친구가 찾아옵니다.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죽은 남편의 동생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도와달라고 해요. 주인공은 여자가 기억하는 살인사건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뒤로 불탄 시체가 발견되고, 여자는 추가 자백을 하고, 사방에서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등 사건은 심상치 않게 전개됩니다.
영화의 첫 인상은 무척 서구적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할리우드에 놓아도 그대로 통할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장르적이라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이란 배우들은 이런 연기를 안 할 것 같잖아요.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 이 사건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큰 것도 지적해야겠군요. 주인공의 보스도 여자이고, 조수도 여자이고 그렇답니다. 모두 만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장 온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가 남편을 포함해 세 명을 죽였고 또 한 명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용의자이니 할말 다 했죠.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엔 섹스가 제거되어 있고, 폭력 묘사도 거의 없습니다. 사건의 진행과정도 무난하고요. 인간 마음 속 지옥을 보여줄 것 같았던 도입부와는 달리 영화의 결말은 그냥 평범한 편입니다. 이런 거 가지고 이렇게 유난을 떨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추리 과정도 조금 어설프고 몇 군데 이치가 맞지 않아보이는 부분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언어갭과 문화갭을 거치는 동안 제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주인공이 좋은 탐정이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보면 그냥 갑갑하더라고요.
소재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비해 영화의 스타일은 거의 단아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아는 이란의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죠. 가끔 이 무덤덤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작정하고 발악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음악도 깔고 화면 효과도 내고 편집으로 장난도 치죠.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대부분 어색하더군요. 아직 장르물을 위한 온전한 도구를 갖추지 못한 거죠. [킬러]가 이란의 장르 영화의 평균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이들이 다음 단계에 오를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겠습니다. (11/07/16)
★★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 나오는 여자배우들이 다들 예쁩니다. 남자 주인공의 상사, 조수, 용의자들 모두 눈에 확 뜨이는 서글서글한 페르시아 미인들이에요. 이 친구, 아주 꽃밭에서 놀더라고요.
감독: Reza Karimi, 출연: Bahram Radan, Mahtab Keramati, Hamed Behdad, Leila Otadi, 다른 제목: The Killer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6209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13 | 엘르 Elle (2016) [3] | DJUNA | 2017.06.17 | 10271 |
112 | 나이트 트레인 Night Train (2009) [3] [2] | DJUNA | 2011.09.02 | 10386 |
111 | 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2016) [2] | DJUNA | 2016.08.14 | 10399 |
110 | 8일째 매미 Yôkame no semi (2011) [3] [42] | DJUNA | 2013.05.27 | 10451 |
109 | 트랜센덴스 Transcendence (2014) [4] | DJUNA | 2014.05.25 | 10506 |
108 | 줄리아의 눈 Los ojos de Julia (2010) [4] [1] | DJUNA | 2011.03.21 | 10556 |
107 | 엣지 오브 다크니스 Edge of Darkness (2010) [1] [1] | DJUNA | 2010.07.04 | 10724 |
106 | 나를 기억해 (2018) | DJUNA | 2018.04.13 | 10729 |
105 | 서치 Searching (2018) [1] | DJUNA | 2018.08.14 | 10792 |
104 | 더 킬링 조크 The Killing Joke (2011) [2] [38] | DJUNA | 2012.12.31 | 10854 |
103 | 사바하 (2019) | DJUNA | 2019.02.16 | 10874 |
102 | 언노운 Unknown (2011) [8] [2] | DJUNA | 2011.02.12 | 10875 |
101 | 날, 보러와요 (2016) [2] | DJUNA | 2016.03.30 | 10891 |
100 | 킹 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 [3] [1] | DJUNA | 2012.03.25 | 10894 |
99 | 몬스터 (2014) [1] | DJUNA | 2014.03.15 | 10907 |
98 | 곤히 주무세요 Mientras duermes (2011) [1] [1] | DJUNA | 2011.10.15 | 10913 |
97 | 카운슬러 The Counselor (2013) [6] | DJUNA | 2013.11.22 | 10976 |
아마 어딘가에서는 우리나라 영화도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겠죠? "코리아엔 박찬욱 영화만 있는 거 아니었어?"라거나 "꼬레 드 쉬르 영화는 다 김기'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봄같은 스타일 아니었어?"라는 식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