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The Artist (2011)

2012.02.18 23:10

DJUNA 조회 수:13889


미셸 아자나비슈스는 최근 몇 년 동안 두 편의 패러디 영화 [OSS 117] 시리즈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진지한 영화들은 아니에요. 그냥 옛날 첩보영화 소재를 가져와서 5,60년대 액션영화 스타일로 만든 조금은 장난스럽고 조금은 영화광스러운 유희지요. 그의 최근작 [아티스트] 역시 [OSS 117]과 같은 태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옛날 영화의 스타일과 소재를 따와서 반쯤은 진지하게 반쯤은 농담스럽게 만든 영화지요. 네, 멜 브룩스처럼요. 그런데 이게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에서 묵직한 성과를 낸 비평적 히트작이 된 거죠. 오스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이 양반의 처음 의도였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거겠죠.

[아티스트]는 무성영화입니다. 이 역시 멜 브룩스가 이전에 [무성영화]로 다룬 적 있는 영역입니다. 그래도 컬러였던 [무성영화]와는 달리 아자나비슈스는 흑백에 1.33:1 화면 비율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멜 브룩스가 [영 프랑켄슈타인]에서 했던 것입니다. 이 정도면 프랑스판 멜 브룩스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말이죠. 물론 이들의 스타일이나 유머의 활용은 전혀 다르니, 굳이 이 연결성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싱잉 인 더 레인]과 [스타 탄생]을 섞고 거기에 멋진 개 한 마리를 첨가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 조지 발렌타인은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인데, 개봉영화 행사 도중 엑스트라인 페피 밀러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주연배우와 엑스트라의 위치에서 영화를 한 편 같이 찍으면서 미묘한 감정을 쌓게 되는데, 발렌타인이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유부남이라, 이들의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습니다. 유성영화 시대가 되자, 이들의 입장은 반대가 됩니다. 발렌타인은 유성영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시들어가고, 페피 밀러는 유성영화 시대의 새로운 스타가 되지요. 네,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20년대 스타일의 무성영화입니다. 하지만 [OSS 117]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엄격한 모방은 아니에요. 화면비율을 지키고, 줌과 같은 이후의 기술은 쓰지 않는 등, 어느 정도 고증을 따르긴 합니다만,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아자나비슈스보다 훨씬 충실하게 무성영화 스타일로 영화를 만드는 가이 매딘의 영화들과 비교해도 영화는 현대적입니다. 분장은 훨씬 정상적이고요, 배우들의 연기나 영화의 스타일도 어느 정도 절제되어 있고요, 각본 역시 이 영화가 시대극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요. 사실 시대극일 수밖에 없어요. 영화는 무성영화지만 유성영화 시대 초반까지 커버하고 있는 걸요. 이런 상업영화는 당시에 만들어질 수 없죠. 감독이 채플린이 아니라면.

[아티스트]의 매력 상당부분은 완전히 유성영화도 아니고 완전히 무성영화도 아닌 그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영화 트릭도 그 사이에서 나오죠. 영화는 음악을 지우고 음향효과만을 깔면서 무성영화 배우의 공포감을 자극하기도 하고, 대사를 하는 배우의 입을 클로즈업하면서 정작 인터타이틀을 깔지 않아 관객들과 주인공을 갑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 30년대에 끝나는 이야기를 20년대 무성영화 스타일로 말한다는 것 자체도 뭔가 좀 이상하면서도 그럴싸하지요. 러닝타임 내내 남들이 안 쓰는 영화 잔근육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티스트]에서 가장 놀라운 성취는 이들이 패러디와 농담들 사이에서 섬세하게 캐릭터의 진짜 감정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조금만 더 20년대 무성영화 스타일에 충실했다면, 영화는 아무리 진지해도 패러디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현대적인 스타일로 갔다면 무성영화라는 형식에 어울리지 않았겠지요. 그런데도 주연배우 장 뒤자르댕과 베레니스 베조는 영화 내내 그 칼날 같은 안전지대 안에서 머물면서도 상당히 넓은 부분의 감정을 소화하고 있단 말입니다. 농담처럼 시작해서 패러디나 파스티쉬처럼 진행되는 영화지만 드라마의 진지함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건 심지어 주인공의 애완견이 린틴틴처럼 맹활약하는 특정 장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장면에서 냉소적일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영화에서 제가 주목했던 것은 할리우드와 미국영화의 첫 번째 전성기를 그리는 영화이면서도 여전히 프랑스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랑스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클로드 베리의 전통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전통 프랑스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조지 밸런타인이 프랑스 사람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영화는 무성영화라는 설정을 이용해 이런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며 할리우드 이야기 속에 능글맞게 숨어드는데, 그 때문에 꼼꼼하게 감추어진 '프랑스다움'이 무심하게 터져 나오는 마지막은 인상적입니다. 프랑스 관객들에게는 울림이 더 컸을 것 같아요. 그 얼마 안 되는 대사까지 더빙하지 않았다면 말이지만. (12/02/18) 

★★★☆

기타등등
클라이맥스에서 [현기증] 음악을 쓴 게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티스트]가 버나드 허먼의 음악을 재활용한 첫 번째 영화도 아니고. 심지어 [현기증] 음악을 재활용한 첫 번째 영화도 아니거든요. 

감독: Michel Hazanavicius, 출연: Jean Dujardin, Bérénice Bejo, Uggie, John Goodman, James Cromwell, Penelope Ann Miller, Missi Pyle, Malcolm McDowell

IMDb http://www.imdb.com/title/tt165544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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