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6 10:22
채널을 돌리다가 채널 J에서 [메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 걸 봤습니다. 별 생각없이 시작했다가 3시간 동안이나 붙잡혀 있었죠. 중간중간에 광고 시간이 있어서 저녁도 먹고 샤워도 했습니다만.
아직도 이 작품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검색해보니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된 모양이군요. 가도가와에서 제작했다는데, 암만 봐도 극장용 영화는 아닙니다.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였을 수도 있고 그냥 DVD로 출시되었을 수도 있어요. 제가 본 것과 부천 상영본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원작으로 동명의 만화가 있답니다.
아키바 레이지라는 탐정이 주인공입니다. 이 탐정은 카구츄치라는 번쩍거리는 권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나의 영총 카구츄치의 힘으로..." 어쩌구저쩌구하는 세일러 문스러운 주문을 외우며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귀신을 쏴 저승으로 보내는 게 일입니다. 그가 주인공인 짧은 에피소드가 아홉 개 묶여 있어요. 초반엔 아키바가 귀신 쫓는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중간에 마코토라는 여고생이 그의 조수가 되면서 그의 개인사 이야기가 조금씩 들어갑니다. 왜 제목이 [메일]이냐고요. 주인공이 메일로 의뢰를 받기 때문이랍니다... 장난 하나...
하여간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독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괴담들이지요. 이런 이야기들도 잘 풀면 재미있는데, 아키바 레이지는 오히려 이 괴담들을 망쳐놓는 경향이 많습니다. 폼 잡으며 귀신에게 총 한 방 쏘면 문제가 다 해결되니까요. 그래도 중반을 지나면 이 상황에 여러가지 변주를 주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그래도 결국 카구츄치를 쏘는 것으로 끝나지만요.
이런 이야기만 하면 정말 싱겁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의 개인사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후반 에피소드들은 아키바 레이지의 과거사와 비밀에 집중하는데, 알고 보니 그에겐 상당히 심각한 사연이 있습니다. 장애와 첫사랑의 추억이 얽힌 신파지요. 여기서 반전이 발생하고 결말로 이어지는데, 아마 여러분은 지금까지 제가 준 정보만으로도 결말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어차피 진지한 작품을 의도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막판엔 신파가 질질 흐르지만 그 역시 그리 심각한 건 아니고. [메일]의 목표는 척 봐도 익숙한 장르 관습을 반복하며 심각한 척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탐정의 조수'가 되겠다며 마코토가 접근하는 부분만 해도 "나는 진부한 장르물 안에서 뻔한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고 있어요"라고 선언하는 것 같죠. 그리고 새로운 시도 없이 진부함을 가볍게 반복하는 것도 재미없지만은 않습니다. 적어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보는 사람들은? 글쎄요. 딴짓하며 생각없이 넋놓고 보기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제 때 돈 내고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좀 속은 기분이었을 거예요. (11/03/26)
★★
기타등등
1. [킬 빌]의 고고 유바리였던 쿠리야마 치아키가 마코토로 나옵니다. 여전히 교복 차림.
2. dexter2님의 정보에 따르면 인터넷 영화랍니다. 그럼 이 구성이 이해가 됩니다.
감독: Iwao Takahashi, 출연: Takamasa Suga, Chiaki Kuriyama, Yû Abiru, Urara Awata, Akira Kubo, Leo Morimoto, Chisato Morishita, Kaoru Okunuki
IMDb http://www.imdb.com/title/tt080151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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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채널 돌렸는데...^^
http://ja.wikipedia.org/wiki/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