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3 01:28
보리는 강릉에 사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입니다. 가족은 엄마, 아빠, 남동생. 부러울 정도로 화목한 가정인데,
한 가지 점에서 다른 '정상가족'과 다릅니다. 보리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농인이에요. 중국집에 전화를
거는 것도, 자잘한 통역에 불려가는 것도 모두 보리의 몫입니다. 이게 불만일까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보리에겐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소리를 잃어서 엄마, 아빠, 동생처럼 농인이 되는 것이죠.
우리 같은 청인 관객은 이 소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아이는 스스로 장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 김진유는 보리처럼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나온 이야기 상당수가 농인 부모를 둔 아이였던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요. 소리를 잃고 싶어했던 것도 그 중 하나였고요. 기자 인터뷰에서 들었는데, 부모처럼 농인이 되고
싶다고 빌다가 실제로 농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도 만난 적 있다고 하더군요.
농인 사회의 정체성은 청인들이 생각하는 장애/비장애의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보리]는 그 중 일부를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고요.
영화의 절반은 CODA로서 보리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반에서 보리는 소리를 잃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요.
깨어난 보리는 여전히 귀가 들리지만 들리지 않은 척 하지요. 여기서 보리는 지금까지 간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갑니다. 완전히 농인의 세계도 아니고 CODA의 세계도 아닌 애매한 중간지대예요. 사람들은
이제 보리를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 취급을 하고 아이는 그 전에는 몰랐던 또다른 사각의 차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어두운 이야기여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많습니다. 영화는 화사하고 귀엽고 밝아요. 보리 또래 아이라면
슬슬 삶이 거칠고 힘들어질 법도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고
보리도 어두운 구석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비욘드 사일런스]와 비교가 되는데,
그렇다고 일대일로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CODA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라고 [나는 보리]가 [비욘드
사일런스]와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밝고 화사한 그림 안에서 명쾌한 주제가 담긴 이야기를
하는 건 감독의 당연한 선택이고, 그 선택 안에서 이 영화는 매력적입니다.
(20/05/12)
★★★
기타등등
보리의 동생은 축구 선수이고, 클라이맥스는 유소년 풋살 대회가 장식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정말로 유소년
풋살 대회를 생중계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안 해준다고 해도 요새는 유튜브 중계 같은 게
가능하겠죠?
감독: 김진유,
배우:
김아송,
이란하,
곽진석,
허진아,
황유림,
다른 제목: Bori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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