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셔가의 몰락]은 마이클 플래너건의 고전 재해석 시리즈의 3번째 작품입니다. 앞의 두 작품은 셜리 잭슨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힐 하우스의 유령]과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각색한 [블라이 저택의 유령]이었지요. 이 작품들의 각색 과정엔 일종의 흐름이 있습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잭슨의 소설을 현대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이었지요. 그런데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나사의 회전]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제임스가 쓴 다른 소설들의 레퍼런스들을 삽입했습니다. 이번 [어셔가의 몰락]은 그 실험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어요. 에드가 앨런 포의 수많은 소설과 시들을 해체해 재조립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드라마의 어셔 집안은 포추나토라는 의약회사의 지배자인 로더릭 어셔, 로더릭의 쌍둥이 누이인 매들린, 로더릭의 재혼한 아내 주노 그리고 로더릭의 아이들과 손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인종적으로 다양한데, 프레더릭과 태멀레인을 제외하면 모두 어머니가 다른 사생아이기 때문이지요. 이 설정을 통해 플래너건은 이전에 같이 출연했던 비백인 배우들을 가족 이야기에 넣을 수 있고 포가 쓴 여러 이름들을 '어셔'의 틀 안에 넣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조는 꽤 복잡합니다. 일단 드라마는 포추나토사의 악행을 수사해온 지방검사보 C. 오귀스트 뒤팽이 로더릭 어셔의 초대를 받아 낡은 집에 오면서 시작됩니다. 로더릭은 뒤팽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게 또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어셔의 아이들이 한 명씩 잔인하게 죽어나간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로더릭과 매들린이 뒤팽과 알고 지냈던 1970년대말과 80년대 초의 이야기로, 일개 직원이었던 로더릭이 어떻게 포추나토사를 지배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포의 원작보다는 미국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셔가의 모델은 '역사상 최악의 마약 딜러'라는 별명을 얻은 새클러 집안입니다. 포추나토사가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마약 중독으로 몰아간 오피오이드 진통제 리고돈의 모델은 옥시코틴이고요. 최근에 새클러 집안과 옥시코틴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가 연달아 제작되었는데, [어셔가의 몰락]도 그 중 하나입니다. 단지 실화에 기반을 둔 이전 작품과는 달리, 포의 각색물을 의도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플래너건은 훨씬 막 나갈 수 있습니다.

플래너건의 관점은 반자본주의적이고 종말론적입니다. 일단 드라마는 탐욕스러운 소수의 억만장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현대 자본주의가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결국 인류의 자멸로 연결된다는 것도요. 이 영화에서 어셔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초자연적인 존재 버나(Verna, Raven의 애너그램입니다)는 로더릭과 매들린을 직접 벌하는 대신 자식들을 죽이는데, 이건 '부모의 죄의 댓가를 자식들이 치른다'는 논리를 따른다는 것으로, 이들의 탐욕에 의한 죄의 대가가 결코 당사자들의 처벌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포의 팬들에겐 역시 플래너건이 포의 재료들을 자기 이야기에 짜넣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을 것입니다. 일단 소제목은 모두 포의 소설 제목이거나 싯구입니다. 고유명사 대부분도 포의 작품에서 따왔고요. [검은고양이]나 [고자질쟁이 심장]처럼 비교적 충실하게 원작을 따르는 장면들이 나오는 챕터도 있고 보다 융통성 있게 사용된 재료들도 있습니다. 종종 포 자신의 개인사가 끼어들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럽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다들 재미있는 건 사실입니다.

[힐하우스의 유령], [블라이 저택의 유령]과는 달리, [어셔가의 몰락]은 많이 차갑습니다. 캐릭터들 대부분은 처벌을 위해 만들어진 악당들이고 깊은 관계 묘사도 별로 없죠. 하지만 섬세한 인간 묘사 같은 건 드라마의 목적이 아닙니다. 플래너건은 잔뜩 화가 나 있고 드라마 내내 우리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하고 있다고 외치고 싶어합니다. 그 때문에 날것의 설교가 상당히 많이 나오기도 해요. 전 그걸 뭐랄 수가 없습니다. 할말이 많으면 그냥 해야죠. (23/10/20)

★★★☆

기타등등
새클러 집안과 관련된 다른 작품은 다큐멘터리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와 [세기의 범죄], 미니시리즈 [돕식: 약물의 늪]과 [페인킬러]입니다.


감독: Mike Flanagan, Michael Fimognari 배우: Carla Gugino, Bruce Greenwood, Mary McDonnell, Henry Thomas, Kate Siegel, Rahul Kohli, Samantha Sloyan, T'Nia Miller, Zach Gilford, Willa Fitzgerald, Michael Trucco, Katie Parker, Sauriyan Sapkota, Matt Biedel, Crystal Balint, Ruth Codd, Kyliegh Curran, Carl Lumbly, Mark Hamill

IMDb https://www.imdb.com/title/tt15567174/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684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