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고든 그린의 [엑소시스트: 믿는 자]는 지금까지 나온 [엑소시스트] 속편과 프리퀄들이 그렇듯, 본편을 제외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을 대충 무시하고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삼부작의 첫 편이니 나중에 나올 속편엔 다른 영화들이 언급될 수도 있습니다만, 본편만 보고 가도 내용 연결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본편을 안 보고 간다고 해도 내용 이해가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아이티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빅터는 임신한 아내와 함께 아이티로 여행을 갑니다. 지진이 나고 아내는 죽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빅터는 아내가 죽기 전에 낳은 딸 앤젤라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안젤라는 친구 캐서린과 실종되었다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악령에 씌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본편과 연결이 됩니다. [엑소시스트] 본편의 주인공 크리스 맥닐이 등장하지요. 크리스는 1편의 사건을 겪은 뒤로 엑소시즘에 대한 진실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는 빅터의 요청을 받아 안젤라를 만나러 옵니다.

보면서 영화가 계산을 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엑소시스트] 속편 모두가 다 이런 함정에 빠져 있긴 합니다만. [엑소시스트]라는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그럴싸함에 있었습니다. 영화는 계속 극단적인 사건들과 이미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일정 수준의 현실감을 유지하고 있고 영화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초자연적인 해석 없이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무엇보다 실화 소재의 영화지요. 이 장르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은 아주 융통성있게 쓰입니다만.

이런 영화의 속편을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그 그럴싸함을 깨트리게 됩니다. 그리고 [엑소시스트: 믿는 자]는 그 익숙한 함정에 빠집니다. 데이빗 고든 그린은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입시킬 새 영화를 만들려는 것처럼 [엑소시스트: 믿는 자]를 만듭니다. 기존 시리즈의 주인공을 데려와 자신의 영화를 기존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통합시키는 연결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 이 이야기는 굳이 본편과의 연결성 없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엑소시스트]와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많은 엑소시스트 소재의 영화들이 나왔지요. 그 때문에 공들여 데려온 크리스 맥닐 캐릭터는 잘 쓰이지도 않는 잉여가 되어 버립니다. 이건 좀 예의가 아닌 거 같아 보입니다.

영화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가? 일단 악령에 들린 아이가 둘이니까 조금 다른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빅터와 앤젤라가 흑인이기 때문에 약간의 인종적 변수도 들어갑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악령퇴치라는 임무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을 축소한 것입니다. 맥닐의 가장 큰 역할은 엑소시즘이 가톨릭에 갇혀 있는 현상이 아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꼭 종교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엑소시스트 2]에서도 언급된 이야기 같습니다.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요.

3부작 이야기가 처음부터 공개되었고 2편 개봉일도 잡혔으니, 데이빗 고든 그린의 머릿속엔 이미 전체적인 청사진이 완성되어 있겠죠. 하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원작의 아우라를 가져와가며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영화는 그냥 무난한 편이고요. (23/10/24)

★★☆

기타등등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카메오가 나옵니다.


감독: David Gordon Green, 배우: Leslie Odom Jr., Lidya Jewett, Olivia O’Neill, Jennifer Nettles, Norbert Leo Butz, Ann Dowd, Ellen Bursty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2921446/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7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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