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연인 (2010)

2010.12.29 23:59

DJUNA 조회 수:11859


캐나다 유학 시절 잠시 휴가를 보냈던 쿠바를 잊지 못했던 정호현은 2005년 가을, 4개월 일정으로 그 나라를 다시 찾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무슨 계획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들고 갔죠. 그러다 보니 쿠바에 정착한 한국인들의 후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쿠바의 실제 모습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겠다는 생각이 솔솔 듭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호현이 10살이나 어린 오리엘비스라는 쿠바 청년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산으로 갑니다. 쿠바에 사는 한국인 후예들과 그들이 보는 쿠바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감독의 연애담으로 변질되는 거죠.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 오리엘비스는 정호현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오고 결국 둘은 결혼까지 해버립니다. 그게 2007년 여름의 일. 그들은 여전히 한국과 쿠바를 오가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둘 사이엔 아들도 하나 있답니다. 


전 이런 일탈이 재미있습니다. 사전 계획을 따르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 생생하지요. 아주 소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만이 이렇게 운좋은 일탈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 일탈이 감독 자신의 사생활과 연결될 가능성은 그보다 더 희박하지요. [쿠바의 연인]은 정말 희귀한 괴물입니다. 


중간에 멋대로 엉뚱한 산을 오르는 영화지만, [쿠바의 연인]은 예상 외로 치밀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사전 계획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니까요. 사전 계획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의 일관된 정치적 관점입니다. 그 때문에 중간에 끼어든 로맨스도 영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영화의 흐름 안에 흡수되지요. 


[쿠바의 연인]는 서로에게 거울상인 두 세계에 대한 영화입니다. 한쪽 끝에는 쿠바가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했지만 반 세기의 세월 동안 그 혁명의 인질이 되어 버린 빈곤한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와 낭만, 음악과 춤이 넘쳐 나는 사람들. 다른 쪽 끝에는 한국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빠르고 인정머리 없으며 지루합니다. 


거울상이라고는 하지만 관객들은 은근슬쩍 한쪽 방향으로 기울게 됩니다. 어차피 우린 한국 사람들이고 우리의 이야기에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억압된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은 쿠바 사람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 나오는 한국 사람들은 거북하고 어색하며 자신의 좁은 세계관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특히 어딜가도 만나게 되는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은 그렇습니다. 아, 이들은 안 만날 수가 없어요. 정호현의 가족들이 몽땅 개신교도들이니까. 이들이 불쌍한 오리엘비스를 '구원'하려고 하는 에피소드는 코미디를 넘어 거의 호러물입니다. 감독에게 예의가 아닌 말이지만 정말 그런 걸 어쩝니까.


어떻게 결혼식으로 끝나긴 하지만 정호현과 오리엘비스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풀어야 할 문제들은 계속 생겨나고 만족스러운 해답은 찾기 어렵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더 의미가 있는 도전일 수도 있겠죠. 그들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도 지루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만 해도 좋은 거죠. (10/12/29)


★★★


기타등등

개인적인 의견을 물으신다면 전 제3국, 그 중에서도 캐나다를 추천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것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감독: 정호현, 출연: 정호현, Orielvis, 다른 제목: Amor revolución!, Cuban Boy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Cuban_Boy.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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