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이라는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케네스 브래나의 이 영화는 여전히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와로 영화입니다. 그 원작 소설은 1969년작인 [핼러윈 파티]. 베네치아는 코빼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핼로윈이 큰 역할을 하긴 하죠.

영화의 배경은 1947년 베네치아입니다. 프와로는 베네치아의 저택에서 채소를 키우면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인 추리작가 아리아드네 올리버가 찾아옵니다. 오페라 가수 로웨나 드레이크의 저택에서 강령회가 벌어지는데 트릭을 밝혀내지 않겠냐고요. 두 사람은 드레이크의 저택에서 한 무리의 수상쩍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 중 가장 수상쩍은 사람은 영매인 조이스 레이놀즈인데, 그만 수상쩍지만 환상적인 강령회 뒤에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폭풍과 홍수 때문에 베네치아 경찰은 레이놀즈의 저택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프와로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살인범을 잡아야 합니다.

원작소설을 읽고 가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까요? 범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가 소설에서 빌린 건 범인 한 명과 핼러윈 파티, 아리아드네 올리버의 개입 정도의 설정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아리아드네 올리버는 크리스티의 캐릭터와 별로 닮은 게 없습니다. 티나 페이의 캐스팅으로 짐작하셨겠지만 일단 미국인이에요.

퍼즐 추리물로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크리스티의 대표작들과 비교가 안 됩니다. 적어도 황금기 일급 추리작가가 쓴 이야기라는 느낌은 없어요. 크리스티라면 절대로 대충 넘기지 않았을 트릭의 구멍도 여기저기에 보이고요. 초자연현상과 범죄가 반전도형처럼 공존하는 이야기는 크리스티보다 존 딕슨 카를 닮았는데, 딕슨 카였다면 더 정교한 트릭을 썼겠죠.

하지만 영화는 앞에 나온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나 [나일 강의 죽음]보다 훨씬 성공적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하죠. 제가 여러 번 말했듯 크리스티의 대표작들은 그렇게 영화적이지 않습니다. 고전으로 여겨지는 크리스티 영화들은 모두 정통추리물의 틀에서 벗어나 있고요. 예를 들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호러물이고, [검찰 측 증인]은 법정물이죠. 브래나와 각본가 마이클 그린은 비교적 덜 유명한 크리스티 소설을 가져와 자기 멋대로 각색하는 출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크리스티의 소설보다 더 영화적인 전통을 따르고 있어요. 지알로요. 영화의 무대가 베네치아인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마리오 바바나 다리오 아르젠토와 같은 거장들의 옛 영화가 뿜어냈던 그 비정상적인 호러물의 향취를 갖고 있습니다.

앞의 두 영화보다 소품입니다. 일단 화면비율이 비스타이고 캐스팅도 이전보다는 조촐합니다. 양자경과 티나 페이 그리고 제이미 도넌 정도가 스타인가요. 음악도 절제를 하고 있어요. 패트릭 도일의 뒤를 힐두르 구드나도티르가 물려받았지요. 그러니까 크리스티 각색물로도, 브래나 영화로도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다른 근육을 쓰는 영화인데, 이 정도면 성공적이고 시리즈의 이후를 기대해볼만 합니다. (23/09/18)

★★★

기타등등
브래나의 다인종 캐스팅 프와로 영화들은 대부분 비백인 캐릭터들이 왜 유럽인들 사이에 있는지 설명하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 우린 조이스 레이놀즈의 사연을 알 수 없습니다. 뭐, 사연이 있겠죠.


감독: Kenneth Branagh, 배우: Kyle Allen Kenneth Branagh Camille Cottin Jamie Dornan Tina Fey Jude Hill Ali Khan Emma Laird Kelly Reilly Riccardo Scamarcio Michelle Yeoh,

IMDb https://www.imdb.com/title/tt22687790/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9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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