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더필드의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가 22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빨리 봐서 좋긴 한데, 그래도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뒤에 스포일러를 섞어가며 이야기하겠지만 케이틀린 디버의 연기가 흘륭한 SF 호러로, 아이디어면에서 여러 흥미로운 점들이 있습니다. 딱 이 정도의 정보만 갖고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브린이라는 젊은 여자입니다. 숲 속 외딴 집에서 혼자 살고 있고 유일한 취미는 마을 모형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호자 역할을 해 주었던 어머니는 최근에 세상을 떠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브린의 집에 비행접시를 타고 온 그레이 외계인이 침입해 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의 특징은 대사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여덟 개 정도 있기는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알아듣기 힘든 짧은 웅얼거림으로 내용 있는 대사보다는 음향 효과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무성영화지요. 그렇다면 브린이 농인이거나 그런 걸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대사를 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혼자 살기 때문에 대화를 주고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로 나가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주지 않습니다. 물론 무성영화는 훌륭한 호러영화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잘 쓴다면 말이지만.

영화의 두 번째 특징은 외계인 침략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엔 익숙한 홈인베이션물처럼 시작합니다. 낯설고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가 침입해서 주인공이 방어를 한다는 거죠. 스타일도, 음악도, 연기도 이 익숙한 틀에 충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첫 그레이 외계인 장면을 다시 보면 의외로 외계인은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처음에만 관습적인 호러 영화처럼 보이는 장면인 것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상황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폭력적이지만 내용을 알고 다시 보면 그것도 또 달라 보입니다. 사실 처음 볼 때도 관객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슬슬 걱정이 됩니다. 저 정도면 주인공이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타이밍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그레이 외계인은 어떤 존재인가? 외계인을 해석하는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적대적인 침략자로 해석하는 냉전식 해석도 있고, 우리를 구원하러 온 존재라는 종교적 해석도 있습니다. 영화는 의외로 후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아담스키 금성인처럼 수월하게 말이 통하는 존재는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게 보기에 이 영화의 그레이 외계인은 구약의 천사에 가깝습니다. 외계인이 브린에게 손짓발짓을 해가며 열심히 하려고 했던 말은 사실 “두려워 말라”가 아니었을까요. 구약의 천사들이 지금 관점에서는 UFO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겠군요.

[잠]처럼 마지막 3막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잠]이 그렇듯, [누구도 널 지켜주지 않아]라는 영화를 완성하는 건 3막입니다. 여기서 브린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끔찍한 사실과 마주치고 그 다음 단계로 나갑니다. 단지 이 영화는 호러이기 때문에 이 ‘치유’의 과정이 아주 올바르지는 않습니다. 종교가 개입되었을 때 발생하는 오싹한 비정상성이 있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레이 외계인이 초월적인 존재의 명을 받는 천사처럼 굴며 지구인에게 치유를 멋대로 강요하고 그걸 굳이 감출 생각도 없는 세계 속에서 벌어지니 그 오싹한 상황은 그냥 정상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인간이 희망없는 하찮은 미물인 것이 정상인 것처럼요. (23/09/26)

★★★☆

기타등등
상황을 뒤집어 보면 이 영화에서 진짜로 무섭고 위험한 건 브린 자신입니다. 그 꼴을 당하면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는 외계인들을 보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군요.


감독: Brian Duffield, 배우: Kaitlyn Dever, Elizabeth Kaluev, Zack Duhame, Lauren L. Murray, Geraldine Singer, Dane Rhodes, Daniel Rigamer, Dari Lynn Griffin, Evangeline Rose

IMDb https://www.imdb.com/title/tt145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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