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는 얼마 전에 기숙사 방을 바꾸었습니다. 새 룸메이트가 된 킴은 외모나 복장, 태도가 남자애 같은데, 파이는 이런 아이들에 대해 편견이 있습니다. 유치하게 바닥에 빨간 줄을 그어놓고 방 저쪽으로 킴을 내쫓은 파이. 하지만 이 영화 [에스 오어 노]는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에 둘은 끝에 가서 결국 맺어지게 되지요. 중간에 킴을 짝사랑하는 파이의 친구 제인의 개입, 사회적 편견에 대한 두려움, 파이의 자칭 남자친구 반과 같은 방해물들을 거쳐야 하지만요.

[예스 오어 노]는 태국 특유의 톰-디 아이덴티티와 관련된 영화입니다. 톰은 부치이고 (레이디의 약칭인) 디는 펨이죠.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묘사되는 편견도 동성애 일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톰에 대한 것입니다. 동성애 일반에 대한 편견은 그 다음에 나오죠. 노골적인 디인 제인이 킴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자유분방한 것도 디에 대한 편견이 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들어보니, 태국에서는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 동성애 관계나 문화 자체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그 대상이 주변 사람들일 경우는 그냥 조용히 입을 닫는 단계라더군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을 거의 백지 상태에 놓고 시작합니다. 척 봐도 톰인 킴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톰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자긴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죠. 파이는 톰-디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생각없이 복종할 뿐 정작 자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모두 그냥 애들이죠.

이 상태에서 두 주인공을 고정된 톰-디 관계로 밀어넣는 영화이니 그렇게 도전적인 내용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단정을 내릴 필요는 없겠죠. 게다가 영화 군데군데에 캐릭터를 일반적인 선입견에 맞추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도 보이거든요. 예를 들어 영화는 킴의 캐릭터에서 일반적인 태국 톰의 전형성을 일부러 빼버립니다. 킴은 남자 말투를 쓰지도 않고 남자 목소리를 흉내내지도 않아요. 대신 요리 잘 하고 벌레나 어둠을 무서워하죠. 이들의 관계에서 주도적이고 언니 행세하는 쪽도 디인 파이고요. 흠, 생각해보니 이것도 은근히 클리셰인가요.

일반적인 아시아 로맨스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예스 오어 노]도 조울증이 심합니다. 전반부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처럼 흐르다가, 중반을 넘어서면 다들 한 번씩 울고, 누군가는 자살을 기도하고, 사방에서 거짓말과 분노, 협박이 쏟아집니다. 이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를 한 번 통과하다보면 몸이 얼얼해지지요. 다행히도 영화는 해피엔딩(설마 이게 스포일러일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귀엽고 달달한 영화입니다. 파이와 킴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예쁘고 파트너와 호흡도 좋습니다. 투박하게 만들어진 소품이지만 처음부터 세련된 영화 같은 건 기대하지 않으셨을 테니 상관 없을 거고요. 이런 영화는 이런 오글오글한 맛에 보는 거죠. (12/05/25) 

★★☆

기타등등
밑은 공식 뮤직 비디오. 그런데 내용이 영화와 많이 다르네요.
http://youtu.be/GyP212bG9JQ


감독: Sarasawadee Wongsompetch, 출연: Aom Sucharat Manaying, Supanart Jittaleela, Arisara Thongborisut, Soranut Yupanun, Inthira Yeunyong,  다른 제목: Yes or No

IMDb http://www.imdb.com/title/tt1906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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