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크리스마스 Black Christmas (1974)

2023.12.28 01:34

DJUNA 조회 수:1534


밥 클락의 [블랙 크리스마스]는 1974년에 나온 캐나다산 슬래셔 영화입니다. 이 설명만으로도 영화의 특별한 점이 설명되지요. 일단 유명한 캐나다 호러 영화가 별로 없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영화들을 빼면 리스트는 더 짧아지지요. 게다가 1974년은 슬래셔가 나오기엔 좀 이른 해입니다. 이미 히치콕이 [사이코]를 만들어서 전례를 세웠고 이탈리아에서는 지알로 영화들이 나오고 있었고 익스플로이테이션 업계에서 수상쩍은 영화들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직 '슬래셔'라는 서브 장르가 관객들 머릿속에서 완전히 고정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려면 [할로윈]까지는 가야죠. 그런데 1974년에 슬래셔 장르 조건을 충족시킨 영화가 캐나다에서 툭 튀어나온 겁니다. 당시엔 미적지근한 평을 받았던 이 영화가 컬트 고전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늘 번역하기 애먹는 'sorority house' 입니다. 대학교 여자학생 클럽 기숙사요. 이곳에서는 언젠가부터 수상쩍은 음란 전화가 걸려와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지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되자 살인마가 그곳 다락방에 들어와 학생들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합니다. 러닝타임 중반을 넘어가면 영화의 설정이 친숙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70년대에 유명했던 베이비시터 도시전설의 대사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각본가 로이 무어에 따르면 1943년에 몬트리올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슬래셔 영화에 친숙한 관객들은 이 영화의 템포가 좀 느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첫번째 희생자가 난 뒤에도 그 살인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영화의 설정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상당부분에서 캐릭터들은 이후에 나온 전형적인 슬래셔 영화에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행동합니다. 실종된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 마을에 일어난 실종과 살인에 반응하는 마을 사람들, 1970년대 여자 대학생들의 문화, 당시 북미 여자들의 삶의 조건과 같은 것들이 꽤 꼼꼼하게 묘사되지요. 어차피 옛날 호러 영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강도가 조금씩 떨어지기 마련이니, 이런 묘사는 오히려 영화에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이 영화의 파이널 걸인 제스의 이야기가 낙태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는 부분은 여러 모로 흥미롭죠. 파이널 걸의 고정 클리셰에서도 살짝 어긋나 있고요.

중반 이후에는 살인의 속도가 붙습니다. 그리고 슬래셔의 미의식에 충실하고 창의적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 있는 몇몇 살인묘사가 이어지며 위에서 언급한 도시전설과 연결됩니다. 사실 도시전설 이야기가 주는 효과는 조금 떨어지죠. '살인마가 집에 있었다'가 도시전설의 반전인데, 관객들은 이미 살인마가 다락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그대로 쓰는 대신 이미 드러난 진상을 이용해 아주 설득력이 있는 건 아니더라도 쉽게 잊을 수 없고 정말 기분 나쁜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거기까지 가는 액션과 서스펜스는 상당한 수준이고요.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데, 좀 애매하죠. [블랙 크리스마스]는 올리비아 허시의 영화 중 [로미오와 줄리엣]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아마 이 영화는 마곳 키더의 영화 중 [슈퍼맨] 시리즈 다음으로 유명할 겁니다. 키어 둘리아도 나오는데, 이 배우가 누군지 아시나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데이빗 보먼이었던 배우입니다. 대체로 하나의 영화로 유명한 배우들이 모여 만든 영화인데, 오히려 배우 개인의 연기나 매력을 보기엔 이 작품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리메이크작이 두 편 나왔습니다. 2006년에 나온 글렌 모건의 리메이크는 원작에서는 빌리라는 이름만 간신히 언급이 되고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 살인마에게 사연을 주고 있습니다. 2019년엔 소피아 타칼의 리메이크가 또 나왔는데, 페미니스트 관점이 강화된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It’s Me, Billy]라는 꽤 유명한 팬 필름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원작의 50주년을 맞아 2부가 나올 거라고 하고 1편의 올리비아 허시도 나온다는데요? (23/12/28)

★★★

기타등등
원본인 도시 전설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베이비시터가 애들을 재우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수상쩍은 남자가 전화를 걸어 "애들이 괜찮은지 확인해 봐"라고 말합니다. 이런 전화가 반복되자 베이비시터는 경찰에 전화를 합니다. 경찰은 다음 통화 때 그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알아내고 베이비시터보고 당장 밖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전화는 집 안에서 걸려오고 있었고, 아이들을 죽인 살인마가 베이비시터도 유인해 죽이려 한 거였죠.


감독: Bob Clark, Edward F. Cline, 배우: Olivia Hussey, Keir Dullea, Margot Kidder, John Saxon, 다른 제목: Silent Night, Evil Night, Stranger in the Hous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1222/
Daum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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