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뺑덕 (2014)

2014.10.13 01:59

DJUNA 조회 수:13269


[마담 뺑덕]이라는 제목을 무시하고 영화를 본다면 처음 절반이 흐르는 동안 이 영화와 [심청전]의 연관성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심학규의 이름은 꼼꼼하게 은폐되어 있고 이솜의 캐릭터 이름 덕은 구식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름이니까요. 제자와의 섹스 스캔들 때문에 시골 소도시로 달아났다가 그 동네 젊은 여자와 눈이 맞은 대학 교수 겸 소설가 이야기. 어디에서 [심청전]이 떠오르시나요.

하여간 전 다들 지루하다고 하는 이 전반부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흔한 이야기이고 흔한 관계죠. 하지만 캐릭터와 배우 보는 맛이 상당했어요. 정우성이 이렇게 쩨쩨하고 비겁하고 재수없는 중년남자를 연기한 건 거의 처음인데 썩 그럴싸했고 배우도 캐릭터를 읽고 연기하는 재미가 있는 티가 났습니다. 이솜은 막 연기의 맛을 알기 시작한 싹수 있는 배우의 파릿파릿한 단계에 와 있었는데, 이런 배우를 구경하는 건 참 좋죠. 호흡도 좋았고 감정 흐름도 좋았습니다. 단지 섹스신은 많이 지루했습니다만. 전 이들의 벗은 몸보다 옷을 입은 몸이 더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어요. 다들 지루하다는 전반부가 이렇게 재미있다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진다는 후반부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슬프게도 예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심학규 교수가 불타는 집에 덕이를 버려두고 떠난 뒤부터 영화는 계속 내리막이었어요.

그게 참 괴상했습니다. 전반부에 비하면 후반부는 진행 속도도 엄청 빠르고 이야기도 엄청 많으며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입니다. 당연히 느리고 현실적인 로맨스인 전반부에 비해 재미가 있어야죠.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빠른 진행 속도에도 불구하고 갑갑했으며 자극은 흥이 떨어졌어요.

왜 그런가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심청전]을 현대 무대로 각색한다는 계획 자체에 발목을 잡힌 것 같습니다. [심청전]으로 가는 전반부는 캐릭터가 올바른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동기는 차곡차곡 누적되었고 감정선도 그 위에서 설득력 있게 쌓이고 있었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심청전]을 흉내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캐릭터는 미리 계획된 이야기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배우들은 열심이고 재미있는 장면들도 꽤 있지만 흐름이 깨지고 설득력이 떨어지고 말아요. 그것만으로도 위태위태한데 기대했던 막장극에도 이르지 못하고 신파로 떨어질 때는 정말 맥이 풀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청전]에 매달린 건 실수였습니다. [심청전]을 각색한다는 계획을 품고 시작했어도 캐릭터가 쌓이고 드라마가 흐르기 시작했다면 원작을 포기할 수도 있었어야죠. 지금으로서는 캐릭터들이 몇백년 전 이야기의 감방에 갇힌 거 같아서 영 갑갑합니다. [심청전]의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14/10/13)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심학규는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잃습니다. 그런데 묘사가 엉망이에요. 분명 각본 쓰면서 조사를 했을 테니 작가나 감독도 자기네들이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눈 걱정을 하면서 몇 년을 날린 저에겐 이게 무척 신경 쓰입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이만.


감독: 임필성, 배우: 정우성, 이솜, 박소영, 김희원, 김남진, 이창훈, 양진우, 다른 제목: Scarlet Innocence

IMDb http://www.imdb.com/title/tt39580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897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0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2011) [6] [1] DJUNA 2011.02.16 13776
349 남쪽으로 간다 (2012) [6] [43] DJUNA 2012.11.29 13757
348 퀴즈왕 (2010) [3] DJUNA 2010.09.08 13743
347 해무 (2014) [1] DJUNA 2014.08.19 13734
346 알이씨REC (2011) [5] [1] DJUNA 2011.11.27 13722
345 페르소나 (2019) [3] DJUNA 2019.04.16 13672
344 5백만불의 사나이 (2012) [3] [1] DJUNA 2012.07.12 13618
343 전국노래자랑 (2013) [4] [7] DJUNA 2013.04.29 13556
342 미확인 동영상 : 절대클릭금지 (2012) [2] [2] DJUNA 2012.05.25 13542
341 서유기 리턴즈 (2011) [12] [1] DJUNA 2011.02.02 13533
340 나는 공무원이다 (2012) [3] [1] DJUNA 2012.07.01 13522
339 헬로우 고스트 (2010) [10] [1] DJUNA 2010.12.06 13508
338 퍼펙트 게임 (2011) [4] [2] DJUNA 2011.12.13 13494
337 에일리언 비키니 (2011) [2] [1] DJUNA 2011.08.06 13394
336 고양이: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2011) [11] [1] DJUNA 2011.07.02 13278
» 마담 뺑덕 (2014) [2] DJUNA 2014.10.13 13269
334 투혼 (2011) [4] [4] DJUNA 2011.09.23 1324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