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2014)

2014.07.30 22:49

DJUNA 조회 수:23573


김한민의 [명량]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명량해전. 이순신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선 빠질 수 없는 소재죠. 단지 김한민은 이순신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 대신 명량해전 하나만 떼어내어 독립적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지상 최대의 작전]이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명량]을 임진왜란판 [지상 최대의 작전]으로 만드는 데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당시 상황을 [지상 최대의 작전] 수준으로 재구성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둘째, 이순신 영웅 묘사에서 벗어나는 게 거의 불가능하죠. 세째, 거리를 두고 이 사건을 냉정하게 관찰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사실 저도 두 번째는 굳이 벗어날 생각이 안 들 거예요. 아, 그리고 네 번째도 있는데,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충실하게 옮기면 생각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결국 영화는 익숙한 영웅 이순신 서사 안에서 당시 상황을 드라마와 주제를 위해 적당히 윤색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도 영화의 절반 정도가 해전에 할애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준비 과정과 후일담에 할애되었으니 이 정도면 [지상 최대의 작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밀덕들이 한참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전쟁영화임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영화의 도입부 절반이 지루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하는데, 전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전쟁 영화와 다른 영화를 보는 차이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명량]처럼 특정 전투 자체에 집중하는 영화라면 도입부는 당연히 일반적인 드라마와 다른 행보를 걷죠. 인간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구체적인 전투 묘사에 종속되어야 하는 겁니다. 당연히 개별적인 드라마로는 부족해 보이는 장면들도 조금 멀리 떨어져서 전투와 함께 보면 큰 그림 안에서 대충 이치에 맞아 보입니다.

후반부는 아까도 말했지만 윤색되었습니다. 영화가 상당한 공을 들여 묘사한 백병전,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죽음을 그리는 방식과 같은 건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추가되거나 변형되었죠. 더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 '[명량] 스포일러'는 인터넷에서 농담거리지만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니 정말로 농담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긴장감을 놓지 않고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전쟁 이야기이긴 한데 그래도 좀 흐릿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 스펙터클을 위해 과장한 스토리, '백성 파워'라는 주제가 하나로 완전히 뭉치지 못해요. 특히 몇몇 극적 반전 장면에 동원되는 '백성 파워' 운운은 지나치게 인공적이라 주제를 살리는 데엔 많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억지로 동원하지 않고 주제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거예요.

따지고 시작하면 지적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긴 한데, 그래도 해전 장면을 이만한 길이로 집중해 보여주는 한국 영화는 드물고 그걸 늘어지지 않게 해냈으니, [명량]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게 김한민이 만들고 싶어하는 이순신 삼부작으로 이어질만한 흥행으로 연결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14/07/30)

★★★

기타등등
김한민의 전작 [활]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 배우들이 일본군 역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좀 무리수였던 것 같습니다. [활]에 나오는 만주어야 거의 사어니까 배우들이 아무렇게 읊어도 되지만 일본어는 사정이 다르잖아요. 어차피 그렇게 비중이 큰 역할들도 아니고.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진구, 이정현, 김명곤, 권율, 노민우, Ryohei Otani, 다른 제목: Roaring Currents

IMDb http://www.imdb.com/title/tt35412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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