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2022)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잠 못 드는 밤]과 [한여름밤의 판타지아]의 감독 장건재의 신작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이 싫어서]의 영화판을 감독했고 그게 부산에서 상영되었으니 아주 최신작은 아닐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극장에 걸린 가장 최근 영화입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오마주입니다. [당나귀 EO]가 [당나귀 발타자르]를 오마주한 것처럼, '암에 걸렸을 수 있는 여자가 의사 진단을 기다리는 두 시간을 그린다'를 일종의 장르적 틀처럼 다루고 있지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1962년작이니 원작의 60주년 기념 실험일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고요.

영화 속 주희는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중년 교수입니다. 클레오처럼 암으로 의심되는 병에 걸렸고요. 딸이 하나 있고 이혼을 준비 중이며 곧 학교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병원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요. 그리고 클레... 아니, 주희를 따라갑니다.

[주희]가 [클레오]와 가장 다른 점은 영화가 주희만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갑자기 주희가 사라져요. 우린 그 다음에 배우들을 지도하는 남자 연극 연출가와 만나게 됩니다. '이게 뭔가?'하고 기다리다보면 이 남자가 주희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 뒤에도 영화는 종종 주희 곁을 떠납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뜨이는 장면은 대학에 들어와 주희에게 길을 물은 배달부의 뒤를 카메라가 따라갈 때지요. 주희가 카메라에 있는 동안에도 단독 주연일 때는 많지 않습니다. 학생이나 동료 교수가 주제를 가지고 온 대화 상대로 등장하지요.

그러니까 영화는 주희 자체만 그리는 게 아니라 주희를 둘러싼 작은 우주를 보여줍니다. 어차피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긴 합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연극배우였다가 덜컥 임신해서 남편이 된 남자에게 연극 일을 넘기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년 여자의 역사를 말해주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요.

하지만 80분 미만의 짧은 영화 속에서 이렇게 가지치기가 많으면 아무래도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주희가 영화가 한 것보다 훨씬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특히 남편이 등장할 때는 '이 사람은 지금 아내의 경력을 단절시킨 것처럼 아내가 주인공인 영화의 러닝타임까지 빼앗는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단 말입니다. (23/11/20)

★★★

기타등등
김주령은 [잠 못 드는 밤]의 주연이었는데, 그 영화 속 주인공 이름도 주희였습니다.

감독: 장건재, 배우: 김주령, 문호진, 안민영, 다른 제목: Juhee from 5 to 7

IMDb https://www.imdb.com/title/tt29486240/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63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