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자막에 대한 불평

2015.05.28 04:35

DJUNA 조회 수:37270


얼마 전 한겨레에 영화 자막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시사회 이후 악명이 높았던 [스파이]의 자막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며칠 뒤 이 영화의 배급사인 폭스사 측에서 해명과 내용 재고를 요청하는 메일이 도착했어요. 이 글은 그 요청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선 그 쪽의 두 가지 지적은 옳습니다.

첫째, 옹달샘의 유세윤은 번역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보는 홍보사의 보도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고 자막 소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정 보도자료가 없었다는 점 역시 밝히고 싶습니다. 하여간 이는 인터넷 기사에 반영되었습니다.

둘째, 그 글을 쓸 때 [스파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던 것도 맞습니다. 와이드스크린 영화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극장에서 하는 행사라 가지 않았어요. 그 쪽 메일에서는 "칼럼니스트 본인이 영화 전체를 다 보고 자막 번역에 대해서 좀더 신중하게 언급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자막에 문제가 있는 정보를 받았다면 개봉전에 그 문제점이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이유가 무엇이건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봉 첫 날에 [스파이]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홍보사와 배급사가 이 자막에 그렇게 당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자막에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씩 지적해 볼까요?

우선 폭스사에서 받은 정보. [스파이]의 자막 번역 작업은 '이례적으로 폭스측 작품 번역을 꾸준히 진행해 온 박지훈 번역가와 미국식 코미디를 국내 정서에 맞게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줄만한 SNL 작가진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스파이] 자막 번역 작업시 영화의 특성상 미국식 코미디 말맛을 좀더 각 나라의 정서에 부합되게 표현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각국의 코미디 전문가와의 협업을 고려해 달라'는 본사의 가이드가 반영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뭐랄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한 달 이상 작업을 했다는 자막 번역의 결과물이 끔찍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자막 지적에 대한 그쪽 답변을 하나씩 들어보죠. 여러분도 궁금할 것이라 믿습니다.

1. [다운튼 애비]를 [셜록]으로 번역해 관객들을 바보 취급했다는 것에 대한 답변.

"영화 속 미드 제목 <다운튼 애비>가 물론 국내에서도 알 사람들은 아는 유명한 미드일 수 있지만 영화 문맥상 좀더 국내 관객들에게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대표 미드 제목을 사용하는 것이 영화를 즐기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어 <셜록>을 대체 사용했습니다."

[다운튼 애비]와 [셜록]은 모두 '영드'입니다. 하지만 이건 넘어가기로 하고.

미안하지만 이건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 자막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운튼 애비]가 왜 [셜록]이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번역자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운튼 애비]라는 프로그램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이 제목이 들어간 농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셜록]으로 제목을 바꾸자."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완전히 잘못된 논리입니다. 아주 단순한 의미만을 담고 있는 문장이라도 맥락 안에서 온갖 추가적 의미를 품습니다. [다운튼 애비] 농담도 마찬가지. 여러분이 [다운튼 애비]의 시청자가 아니라고 해도 (저 역시 영국 계급사회를 다룬 시대극이라는 것밖에 몰라요) 그 전체 농담의 맥락 안에서 그 제목이 영국 드라마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고 그건 전혀 복잡하거나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 농담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건 기초적인 한국어 지식과 정상지능이지 영국 드라마에 대한 깊은 지식이 아니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스파이]를 보러옵니다. 이들 중엔 영국 드라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주드 로나 제이슨 스테이텀 심지어 미란다 하트의 팬들도 있어요. 트위터를 검색해보니 저 [다운튼 애비] 농담을 한 배우 피터 세라피노위츠의 한국팬도 있는 모양입니다. 번역자들은 [다운튼 애비]를 [셜록]으로 돌려서 모두를 만족시켰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운튼 애비]를 몰라도 충분히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관객들에게 굳이 할 필요없는 선심을 쓰고 번역자보다 영드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을 다른 관객들을 부당하게 어린애 취급했을 뿐이죠. [다운튼 애비]를 그냥 [다운튼 애비]라고 쓰면 이 모든 부작용은 사라집니다.

[다운튼 애비]는 [스파이] 번역에 포함된 수많은 바보 취급의 일부일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바보취급은 첼리스트라는 단어를 관객들이 못 알아들을까봐 친절하게 '첼로리스트'라는 신조어를 발명한 박지훈 번역가의 수많은 서비스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런 예는 끝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더 지적하기로 합니다.

하나는 주인공 수잔이 자신의 양주먹을 캐그니와 레이시라로 부르는 장면입니다. [캐그니와 레이시]는 80년대 미국 형사물로 아마 많은 한국 관객들이 모를 겁니다. 친숙한 고유명사로의 대치는 이해가 가요. [다운튼 애비]와 다를 게 뭐냐고요? 그건 이름만으로는 쉽게 유추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캐그니와 레이시는 모두 여성입니다. 수잔의 입장에서 보면 힘있는 여성 캐릭터의 언급은 맥락 안에서 중요하기 짝이 없고 번역자는 이를 반영해야 하죠. 하지만 자막은 이 두 이름을 남성 축구선수 이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고유명사의 대치는 이루어졌지만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무는 포기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금 서글픕니다. 스테이텀이 연기한 스파이 릭 포드가, 자기가 버락 오바마로 완벽하게 변장한 적 있다고 허풍을 떠는 장면. 원래 대사에서 수잔은 그것이 인종차별적인 예민한 발언임을 지적하는데, 자막에서는 그게 그냥 "또라이 같은 짓"이 됩니다. 다시 말해 번역자들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적 이슈라는 걸 한국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치고 처음부터 번역을 포기한 것이죠. 한국 관객들이 인종차별 이슈에 둔감한 건 사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포기가 과연 옳은 것인가요?

2. 이 외에도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 넘기기로 하죠. 그럼 이번엔 영화의 욕설에 대한 답을 들어볼까요?

: '뚱땡이'는 asshole 이라는 원래 대사가 나옵니다.그리고 더 비하하는 욕설('개창녀'로 번역)에 해당하는 원래 단어는 bitch 가 아닌_그 보다 심한_ thundercunt 라고 정말 미국에서도 엄청난 욕으로 실제 쓰이는 단어가 대사로 나옵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극중 마초를 대표하는 밉상 캐릭터인 '포드'(제이슨 스타뎀)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대사로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거나 여성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우선 전 이들이 왜 thundercunt를 개창녀라고 번역했는지 이해합니다. 험한 욕이고 대사에서도 험한 욕이라고 언급되니까. 하지만 thundercunt가 개창녀보다 더 험한 욕이라는 데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어요. 비하의 정도나 방향 모두가 한국어쪽이 더 강해요. 강할뿐만 아니라 원작 전체의 의미까지 해치고 있죠.

무엇보다 뚱땡이 변명은 말이 안 됩니다. 언제부터 asshole이 뚱땡이로 번역되던가요? 번역자팀은 둘 다 욕이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아요.

[스파이]에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온갖 욕설과 화장실 농담, 폭력이 난무하는 성인용 코미디이며 멜리사 매카시라는 과체중의 코미디언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당연히 할 거라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요. 영화 어딜 봐도 매카시가 연기하는 수잔의 체형이나 외모를 비웃는 대사가 없어요. 충분히 그럴 것 같은 성격인 포드도 그런 욕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수잔은 온갖 구박을 다 받지만 그 타겟은 수잔의 직장내 위치나 패션 센스, 눈병에 대한 것입니다. 심지어 예고편에서 체중농담처럼 보이던 슬랩스틱도 전체 맥락에서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럼 이 영화는 과체중 사람들에 대한 비하가 사라진 이상적인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 리가 있나요. 하지만 [스파이]의 감독 겸 작가인 폴 페이그는 이 영화를 통해 중요한 시도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멜리사 매카시라는 재능있고 매력있는 코미디언을 캐스팅한 뒤 이 사람에게 늘 따라다녔던 과체중 농담을 떼어내고 다른 종류의 코미디와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태도이며 그 시도는 성공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이상 텍스트를 연구했다는 박지훈 번역가와 SNL 작가팀은 폴 페이그가 마치 뇌수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제거한 이 외모비하 농담들을 곳곳에 심어놓습니다. 마치 '뚱땡이 배우' 주연의 영화에 '뚱땡이' 대사가 없으면 코미디 법에 위반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독이 정면으로 맞서는 선입견에 비겁하게 알아서 복종하는 이런 자막을 보고도 불평을 하지 말라고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요? (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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