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2012)

2012.07.18 22:43

DJUNA 조회 수:16332


[무서운 이야기]는 [기담]의 정범식, [스승의 은혜]의 임대웅, [키친]의 홍지영,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김곡,김선이 만든 네 개의 호러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이들은 모두 독립된 단편이지만, 이야기의 일관성을 주기 위해 이들을 액자 형식으로 묶는 민규동의 단편이 브리지 형식으로 삽입됩니다.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질은 들쑥날쑥하며, 별점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영화는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된 소녀가 정신을 차리면서 시작됩니다. 언어장애가 있는 듯한 살인마는 자기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명령하고, 소녀는 세헤라자데처럼 그에게 네 개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동생이랑 영어학원에 다녔을 때 겪었던 일"이라거나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로 운을 떼긴 하지만 정말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건 아니고요. [Tales from the Darkside] 영화판을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데보라 해리가 마녀로 나왔던.

정범식의 [해와 달]은 선과 문이라는 남매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 있는 동안, 영어학원에서 돌아온 남매는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소꼽놀이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 물건을 배달하러 온 택배 아저씨가 계단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도끼로 아이들을 위협하고, 아이들은 정신없이 달아나는데, 아저씨의 얼굴이나 행동이 뭔가 이상한데다가, 주변에 이상한 긴머리 여자귀신도 하나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4분의 3 정도는 전통적인 K-호러입니다. 긴 머리 귀신, 요새 애들은 절대로 안 입을 것 같은 고색창연한 잠옷을 입은 소녀... [장화, 홍련]의 영향을 받은 한국 호러가 할 법한 거의 모든 것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게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인테리어만 해도, 단순히 '청담동 호러'로 가는 대신, 한국의 현대식 아파트들이 얼마나 황량하고 무서운 곳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여자 귀신이 나오는 장면들은 [기담]의 엄마 귀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나로 나오는 김현수와 동생으로 나오는 노강민은 모두 좋은 배우여서 몰입도 쉽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두 아이의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이야기를 휙 뒤집어버립니다. 하긴 이 에피소드는 가장 진지한 순간에서도 어딘가 위태위태 패러디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그 뒤부터 또 다른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지금까지 한 이야기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역시 무섭긴 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논리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 둘은 그렇게 잘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우선, 관객들이 집중하며 보고 있던 이야기의 중요성이 갑자기 떨어져버리니 실망스럽습니다. 그 실망이 의도된 것이라고 해도 후반부의 연기나 대사의 질이 선과 문이 나오는 부분에 비해 심하게 떨어지니 그게 문제죠.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고 단순화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설교투예요. 이런 단점들이 하나로 묶여 있으니 은근히 생색낸다는 생각도 들고, 관객들을 깔본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각엔, 남매가 나오는 이야기 안에서 통일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 원래의 의도에도 더 잘 맞았을 것 같고, 그게 양쪽 이야기를 모두를 더 존중하는 방식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임대웅의 [공포비행기]는 택시 운전사로 위장해서 여자들을 살해하던 연쇄살인마가 체포되어 특별기편으로 이송되면서 시작됩니다. 비행기가 뜬지 얼마되지 않아, 이상할 정도로 유능한 살인마는 동반하고 있던 이상할 정도로 무능한 형사들을 순식간에 제압합니다. 주변엔 시체들이 쌓이고, 이제 살인마와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한 사람은 스튜어디스 소정뿐입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서스펜스가 폭발하지요. 실제로 이 에피소드는 조금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초반 몇 분을 제외하면 끝날 때까지 계속 위기상황이니까요.

단지 아이디어가 부족합니다. 아니, 그냥 없습니다. 설정은 있는데,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꺼내든 것들은 모두 자질구레한 임시방편들이지요. 나머지 부분에서는 위험한 살인마가 흉기를 들고 설치는데, 주인공은 밖으로 달아날 수 없는 비행기 안에 갇혀 있다는 상황 자체의 긴장감을 그냥 연장하고 있을 뿐이죠. 그 때문에 결말과 반전은 맥이 빠지고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특히 반전은 그냥 공허해요. 의도했던 쇼크도 없고. 조금만 머리를 썼다면 더 재미있었을 이야기입니다.

홍지영의 [콩쥐, 팥쥐]는 원작이 있습니다. 조선희의 [모던팥쥐전]에 나오는 단편 [서리, 박지]인 것 같더군요. 그런데 영화의 이야기는 [서리, 박지]와 별로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서리, 박지]처럼 [콩쥐, 팥쥐] 이야기의 특정 모티브를 따와 직접 재해석을 시도해본 모양입니다.

원작처럼 배다른 자매가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모태미녀 공지는 재력가 민회장과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모는 자기 딸인 박지를 그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지요. 모녀의 음모가 무르익는 동안, 민회장의 집에서도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으니, 하긴 환갑 먹은 남자가 아직도 배수빈처럼 보이면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콩쥐, 팥쥐]가 원작이니 [신데렐라] 영화여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샤를르 페로의 다른 동화에 더 가까운 내용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각본이 안 좋습니다. 잔혹동화니까 잔혹동화의 논리를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전 잔혹동화라고 홍보하는 이야기들이 싫습니다. 동화 이야기를 하면서 어른인 척 으스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은 동화에도 안 맞고, 호러에도 안 맞고, 막장 아침연속극에도 안 맞습니다. 그냥 괴상해요. 그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했다면 소름끼쳤을 수도 있었을 막판의 한 방은 어이가 없습니다. 호러가 되기위해 투여한 효과들은 지나치게 긴장한 티가 역력해서 대부분 실패고요.

김곡,김선의 [앰뷸런스]는 좀비 세상이 된 근미래의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안전지대로 달려가는 앰뷸런스 안. 그런데 길에서 엄마와 함께 무심코 태운 여자아이의 상태가 수상합니다. 군의관은 당장 아이를 버리려 하고, 간호사는 상태를 조금 더 두고 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아이의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건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곡, 김선의 평판은 이 영화에 참여한 감독들 중 가장 망나니스럽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에피소드는 이 영화 전체를 통해 가장 정통적인 호러입니다. 장르의 규칙을 따를 뿐만 아니라 이를 영화 끝까지 존중하고 있지요.

게다가 드라마도 좋습니다. 어느 한쪽, 그러니까 군의관 같은 사람을 악당으로 몰고가기는 쉽지만, 이들의 입장은 모두 공평하게 변호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은 간호사쪽을 응원하고 싶겠지만, 그래도 어느 쪽의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앰뷸런스 안의 드라마와 좀비 습격의 배분도 잘 되어 있고요. 결말도 좋습니다. 아주 도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바람직한 좀비 영화란 말이죠. 이 앤솔로지에서 한 편만을 뽑아야 한다면 [앰뷸런스]를 고르겠습니다. (12/07/18) 

★★☆

기타등등
김지원은 제대로 된 호러 영화에 다시 한 번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은근히 장르에 맞는 얼굴. 질은 들쑥날쑥해도 이 영화의 캐스팅은 좋은 편입니다. 


감독: 정범식, 임대웅, 홍지영, 김곡, 김선, 민규동, 출연: 김현수, 노강민, 이동규, 진태현, 최윤영, 정은채, 남보라, 배수빈, 나영희, 임성민, 김지영, 김예원, 조한철, 유연석, 김지원, 다른 제목: Horror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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