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와 소파 Tretya meshchanskaya (1927)

2015.11.28 22:18

DJUNA 조회 수:2937


"뭐야? 소비에트 프리 코드야?" 아브람 롬의 1927년작 무성영화 [침대와 소파]를 틀어주고 있는 MUBI 사이트의 사용자 한 명이 이렇게 코멘트를 달았더군요.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 인용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침대와 소파]는 스탈린 이전의 소련에서 창작의 자유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린 콜랴와 류다라는 커플을 만나게 됩니다. 콜랴는 공사판 십장이에요. 류다는 전업주부고요. 그들은 정말 성냥갑만한 작은 모스크바의 아파트에서 고양이 한 마리랑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콜랴는 길에서 만났다면서 인쇄공인 친구 볼로디아를 집에 데려옵니다. 두 사람과 한 마리만으로도 좁아 터지는 방인데 이제 식객이 소파까지 차지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콜랴는 일 때문에 출장을 가고 류다와 볼로디아 그리고 고양이만 집에 남습니다. 당연하지만 두 사람은 그만 눈이 맞아요. 출장에서 돌아온 콜랴는 둘 사이를 알아차리고 가출하지만 모스크바엔 그가 머물 곳이 없습니다. 결국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온 그는 얼마 전까지 볼로디아가 자던 소파를 차지합니다.

네, 정말 이런 내용의 소련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서 정식상영이 불가능했는데, 영화의 '부도덕한' 주제 때문이었죠. 당시 소련 내부에서는 대히트를 쳤는데, 당시 관객들이 정치와 상관없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소련에서 서방문화를 이런 식으로 넘어섰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죠.

정치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아니, 정치적인 영화이긴 한데, 우리가 소련영화에서 기대하는 정치선전물은 아니죠. 콜랴, 류다, 볼로디아는 모두 비정치적인 사람들입니다. 전력 질주를 해야만 간신히 먹고 사는 게 가능한 상황이니 그런 데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죠. '노동자의 천국'이 되었다지만 20년대 소련은 살기 힘든 곳이고 영화는 그 시대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상이 어땠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영화가 그리는 '부도덕한 관계'는 혁명의 시대를 지나 점점 보수화되는 소련의 분위기에 대한 저항적 태도의 반영이라고 이야기들 하더군요.

현대 관객들의 눈으로 보면 이 영화는 흥미로운 페미니스트 텍스트입니다. 일단 영화가 세 사람의 노동을 그리는 방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콜랴와 볼로디아의 노동은 당시 소련 영화가 그리는 것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류다의 가사노동은 거의 쓰레기장과 같은 아파트를 간신히 유지시킬 정도에 불과하고 칭찬도, 보상도 없습니다. 두 남자의 갈등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다가 류다의 임신 이후 갑자기 류다의 입장을 전면으로 끌어내는 화법은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영화는 류다가 남자들을 남겨두고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끝이 난다고요. 뒤가 궁금하지만 그만큼이나 그 자체로 완벽한 결말입니다. (15/11/28)

★★★☆

기타등등
위에서도 종종 언급을 했지만 고양이가 참 편안한 영화의 일부로 존재하는 영화예요.


감독: Abram Room, 배우: Nikolai Batalov, Lyudmila Semyonova, Leonid Yurenev, 다른 제목: Bed and Sofa

IMDb http://www.imdb.com/title/tt0018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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