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세상을 뜬 노먼 주이슨을 기리기 위해 [모두에게 정의를]을 보았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용감한 변호사]라는 제목이 뜨는데, 이게 개봉제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전 유튜브 제목을 따릅니다. 나름 유명한 영화이고 알 파치노의 대표작이며 마지막 법정 장면에 미국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된 아주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데, 전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파치노는 이 영화에서 아서 커클랜드라는 볼티모어의 변호사로 나옵니다.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고, 변호사 경력은 12년이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있습니다. 영화 내내 커클랜드는 여러 의뢰인을 변호하고, 연애도 좀 하고, 판사들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관계에 얽힙니다. 의뢰인 중 눈에 뜨이는 사람은 강도 사건에 말려든 흑인 드랙퀸, 교통법규 위반으로 체포되었다가 거의 장 발장 수준으로 운이 나빠 몇 년 째 감옥에서 썩고 있는 백인 남자가 있고... 아, 마지막이 진짜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커클랜드와 사이가 안 좋은 판사가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자 커클랜드에게 사건을 의뢰하거든요.

거의 모든 면에서 [살인의 해부]와 반대되는 영화입니다. [살인의 해부]는 비록 우리가 사건의 진상에 접근할 수 없고, 법조인들이 아무리 수상쩍게 굴어도 결국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최선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더 이상 시스템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1970년대 영화니까요. 법조인들은 게으르거나 무책임하거나 부패해있거나 승패에만 집착하고 있고, 이 뒤틀린 시스템의 해악은 고스란히 흑인, 성소수자, 빈민과 같은 약자들에게 돌아갑니다. 아무리 커클랜드와 같은 성실한 변호사가 자기 일에 충실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코미디입니다. [살인의 해부]처럼 능글맞은 코미디가 아니에요. 대놓고 블랙 코미디죠. 이 영화에 나오는 법조인들은 모두 캐리커처입니다. 자살 시도가 취미인 판사도 있고,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의뢰인이 다시 살인을 저지르자 맛이 가버린 변호사도 있습니다.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판사요? 그 인간은 그냥 나쁜 놈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도 없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엔 커클랜드도 맛이 가버립니다만, 이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며, 적어도 우리의 주인공은 영화 러닝타임 대부분 동안 가장 정신이 온전합니다.

마지막 법정장면은 순전히 사이다를 위한 사이다처럼 보이긴 합니다. 강간범인 판사를 그냥 풀려나게 둘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해답을 찾긴 해야겠지요. 이 장면의 광기가 알 파치노라는 배우와 또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한 방을 위해 캐릭터를 좀 막 굴렸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닙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야 엔드 크레딧이 올라가면 더 이상 그 세계에 들어갈 이유가 없지만, 거기 남은 커클랜드는 어쩌나요?

영화는 알 파치노의 매소드 액팅으로 유명합니다. 파치노는 자기 할아버지로 나오는 리 스트라스버그를 카메라가 돌지 않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촬영장의 누군가가 계약서에 대해 묻자 변호사처럼 상담해주기도 했다고요. 파치노는 종종 몰입해서 연기를 하는 동안 애드립을 치기도 했는데, 그게 상대방 연기를 계속 방해하자, 리 스트라스버그가 "제발 대사를 외워, 이 친구야."라고 혼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애드립을 치는 배우들 상당수는 그냥 대사를 암기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파치노도 그 경우였다고요. (24/02/13)

★★★

기타등등
영화의 각본가는 발레리 커틴과 배리 레빈슨. 둘은 당시 부부였고 이 영화는 각본가 팀으로 협업한 첫 작품이었습니다.


감독: Norman Jewison, 배우: Al Pacino, Jack Warden, John Forsythe, Lee Strasberg, Jeffrey Tambor, Christine Lahti, Craig T. Nelson, Thomas Waites, Sam Levene, 다른 제목: 용감한 변호사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78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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