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2023)

2024.02.17 14:57

DJUNA 조회 수:2958


[소풍]은 [와니와 준하]와 [분홍신]을 만든 김용균의 신작입니다. 크레딧에는 안 나와 있지만 영화에는 원작이 있어요. 나문희 팬이 쓴 일종의 팬픽션으로, 엄마와 아들 이야기였다고 해요. 글은 나문희 매니저에게 넘어갔고 조현미 작가가 여기에 살을 붙여 각본을 썼습니다. 그리고 각색 과정 중 모자 이야기에서 친구 이야기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 같습니다.

사돈 지간인 두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사돈이 되기 전부터 절친이었고요. 나문희가 연기하는 은심은 어린 시절 남해의 고향 마을을 떠나 서울에서 살았고 김영옥이 연기한 금순은 고향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치킨 사업을 하던 은심의 아들이 불량 식용유를 써서 들통이 납니다. 아들 부부는 은심의 집으로 기어들어오고, 은심은 마침 서울을 방문한 금순과 함께 고향 마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렸을 때 은심을 짝사랑하던 태호를 만나요.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세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조금씩 흘립니다.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두 주인공은 그냥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세계는 사라져 가고 있어요. 이걸 대표하는 것이 고향 마을의 리조트 타운 건설이고요. 무엇보다 마음의 위안이 되어야 할 자식들이 영 도움이 안 됩니다. 특히 아들들이 그래요. 영화가 끝날 무렵에 두 주인공은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 그걸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외로 어둡기만 한 영화는 아닙니다. 노인 소재를 다룬 영화가 종종 빠지는 정체된 느낌이 없어요. 이야기를 다루고 끌어가는 방식이 젊은 느낌이죠. 유머도 상당한 편이고 배우들의 호흡이 좋아서 늘어지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래도 앞에 깔아놓은 컴컴한 소재들을 처리해야 하고 (그 중 하나는 상당히 무서운 비장르적인 호러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제대로 먹히는 로맨스입니다. 그것도 퀴어 로맨스요. 딱 노인 관객들이 겁먹고 달아나지 않을 정도로만 연막을 쳤을 뿐, 영화는 은심과 금순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이름부터 운명처럼 엮였지요. 사돈 지간이라는 설정은 이들에게 거의 간접 결혼과 같습니다. 영화는 심지어 작은 마을 사람들의 호모포비아를 꽤 깊게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친구 이야기라는 위장이 거의 벗겨져 버리죠. 무엇보다 박근형이 연기하는 태호의 쓰임새가 너무나도 노골적입니다. 이 캐릭터의 기능이 조금씩 밝혀지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립니다. 그래도 대다수의 관객들은 이걸 친구 이야기로 해석하겠지만. (24/02/17)

★★★

기타등등
임영웅의 자작곡이 영화 엔드 크레딧에 나오고,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인 모양입니다. 배우들도 다 임영웅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지만 영화에서 진지하게 영화 음악으로 쓰이는 건 베토벤과 리스트입니다.


감독: 김용균, 배우: 나문희 , 김영옥 , 박근형 , 류승수 , 이항나 , 공상아 , 임지규 , 최선자 , 이용이 , 한태일 , 곽자형, 다른 제목: Picnic

IMDb https://www.imdb.com/title/tt29579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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