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뭐가 나빠]가 시작되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하나는 'F*ck Bombers'라는 고등학생 영화 동아리로, 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기네들이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찍습니다. 다른 하나는 경쟁관계인 야쿠자 무리로, 야쿠자 1번이 야쿠자 2번의 두목을 처치하기 위해 두목네 집을 막 급습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동안 혼자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식칼로 그들 네 명을 죽여버리죠. 살아남은 야쿠자가 피를 흘리면서 달아나는 동안 F*ck Bombers가 그에게 다가오고 그는 학생들이 자기를 찍는 걸 허락합니다. 온갖 일본식 똥폼을 잡으면서요.

깜빡했네. 이들이 등장하기 전에 먼저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쿠자 2번 두목의 딸인 미츠코요. 영화는 아역배우인 미츠코가 출연한 치약광고로 시작되는데요. 이 광고에서 미츠코가 부르는 노래는 영화 전체를 통해 거의 주제곡처럼 사용됩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부르는 노래인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감기처럼 입에 착 달라붙어 떼어내기가 힘듭니다.

오프닝이 끝나고 세월은 10년을 훌쩍 건너 뜁니다. 앞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감옥에 간 야쿠자 두목 무토의 아내가 출옥을 앞두고 있지요. 무토는 여전히 두목 노릇을 하고 있고 피를 흘리며 달아나던 야쿠자 이케가미는 새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살인범이 된 엄마 때문에 미츠코의 연예계 경력은 시들시들해졌고요. 그리고 'F*ck Bombers'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폐허가 되다시피한 낡은 극장에 모여 10년 전과 똑같이 놀고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야쿠자 지망생이었다가 우연히 이들에게 캐스팅되어 한무리가 된 '일본의 브루스 리'인 사사키뿐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중반 이후에 만납니다. 어떻게 만나는지를 설명하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져요. 그래도 억지로 글로 쓸 수는 있는데, 그럼 여러분은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물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불신은 잠시 접어두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F*ck Bombers' 패거리들은 미츠코를 주인공으로 35밀리 야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걸 진짜 무토 패거리와 이케가미 패거리의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찍게 된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출옥하는 아내에게 딸이 주연한 영화를 선물로 주려는 무토와 10년 전 피투성이 살인현장에서 미츠코를 처음 만난 뒤로 열성팬이 된 이케가미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의 각본은 소노 시온이 아직 인디 영화계에 몸을 담고 있던 젊은 시절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카메라만 쥐고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소노 시온과 국제적인 영화감독이 된 중년의 소노 시온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키를 쥐고 있는 건 중년의 영화감독이겠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젊은 각본가 소노 시온의 천진난만한 광기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세상에 남길만한 명작 영화를 단 한 편만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악마에 영혼을 팔아도 좋은 영화광들의 미치광이 열정이 가득합니다.

피투성이 살육과 악취미 농담으로 푹 절어있는 영화지만, [지옥이 뭐가 나빠]는 괴상할 정도로 로맨틱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어요. 그게 영화이건, 연예인이건, 배우자이건요. 영화는 그 사랑을 아무런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단도직입적인 감정이 너무 절실하고 날 것이라 전혀 어색하거나 유치해보이지 않습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는 정신나갈 정도로 웃기고 신나는 영화입니다. 리듬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의 농담과 살육으로 일관하는 영화지요. 그 때문에 중반에 가면 조금 지치긴 합니다. 살짝 템포가 느려져도 조바심이 나고 마약 중독자처럼 계속 더 강한 자극을 기대하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용하게 계속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자극을 제공해줍니다.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영화제용으로 이처럼 신나는 영화도 찾기 힘들 거예요. (13/10/16)

★★★☆

기타등등
35밀리 필름에 대한 러브레터와 같은 작품이지만 디지털이죠. 아아...


감독: Shion Sono, 배우: Hiroki Hasegawa, Gen Hoshino, Akihiro Kitamura, Jun Kunimura, Fumi Nikaidô, Tak Sakaguchi, Tomochika, 다른 제목: Why Don't You Play in Hell?

IMDb http://www.imdb.com/title/tt240930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09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82 성적표의 김민영 (2021) DJUNA 2022.09.08 1930
1881 블랙폰 The Black Phone (2022) DJUNA 2022.09.07 1759
1880 다시 만날 때까지 I'll Be Seeing You (1944) DJUNA 2022.09.06 1012
1879 스펠 Spell (2020) DJUNA 2022.09.05 1485
1878 폭찹 고지전투 Pork Chop Hill (1959) DJUNA 2022.09.04 995
1877 키미 Kimi (2022) DJUNA 2022.09.03 1299
1876 노스맨 The Northman (2022) [1] DJUNA 2022.09.02 2643
1875 리미트 (2022) DJUNA 2022.09.01 1401
1874 베스티스 Les Meilleures (2021) DJUNA 2022.08.31 1050
1873 씨씨 Sissy (2022) DJUNA 2022.07.25 3573
1872 잘라바 Zalava (2021) [1] DJUNA 2022.07.25 1760
1871 헤어질 결심 (2022) [2] DJUNA 2022.07.18 8083
1870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Jurassic World Dominion (2022) DJUNA 2022.06.04 4809
1869 더 노비스 The Novice (2021) DJUNA 2022.06.02 2552
1868 매스 Mass (2021) DJUNA 2022.06.01 2398
1867 평평남녀 (2021) DJUNA 2022.05.16 2766
1866 파리, 13구 Les Olympiades (2021) DJUNA 2022.05.15 281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