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요로나 La Llorona (2019)

2023.07.05 01:03

DJUNA 조회 수:1113


[라 요로나]는 신기할 정도로 무개성적인 제목이죠. 이 제목을 가진 영화가 수백편은 될 거 같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유명한 귀신 이야기 주인공이니까요. 할리우드에서도 이 캐릭터를 소재로 한 영화가 몇 편 만들어졌죠.

그런데 하이로 부스타만테가 감독한 2019년 영화 [라 요로나]는 그렇게 무개성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이 제목을 단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할 법한 호러물도 아니고요. 귀신 나오는 호러는 맞는데, 이 영화의 귀신을 보고 무서워하는 관객들은 없을 거예요.

엥리케 몬테베르데라는 늙은 남자가 사는 저택이 배경입니다. 몬테베르데는 1980년대에 마야 사람들을 학살한 죄로 재판을 받았어요. 유죄판결이 내려졌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뒤집었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칵치켈인인 하인들은 한 명 빼고 모두 그만 뒀어요. 그리고 알마라는 새 하녀가 들어옵니다.

몬테베르데의 악행은 허구의 인물이 저지른 것 치고는 너무 큽니다. 그건 이 사람의 모델이 과테말라의 군부 독재자 에프라인 리오스 모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전두환의 이름을 전두완 정도로 바꾸고 말년을 그리는데, 여기에 광주 희생자 유령들을 첨가한 것과 비슷한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독재자는 2018년에 죽었고 영화는 201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장르 호러가 되고 싶은 의도는 별로 없는 영화입니다. 그러기엔 다루고 싶은 역사의 무게가 너무 크니까요. 이 영화의 진짜 호러는 초자연현상에서 오지 않습니다. 반공주의를 내세우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수천 명을 학살한 인종차별주의 쓰레기 악당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더 무섭죠. 그 악당도 귀신들이 보이니 좀 무섭겠죠. 하지만 곧 죽을 늙은이가 잠시 무서워한다고 정의의 균형이 실현될까요?

영화는 몬테베르데에게 개심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악당들은 그럴 수 있는 깊이가 없지요. 대신 영화는 몬테베르데의 주변의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아내, 의사인 딸, 손녀. 딸은 아버지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였습니다. 남편 못지 않게 인종차별주의자인 아내는 부인하고 있지만 영화의 초자연현상은 이 사람이 새로운 관점에서 당시 사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어린 손녀는 셋 중 가장 마음이 열려있고요.

라 요로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영화는 이 익숙한 전설과 과테말라 현대사를 연결하는 장치를 만들어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늙은 인종차별주의자의 저택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수백년의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압축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지요. 이게 100퍼센트 자연스럽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는 장르적 완성도보다는 이를 통해 전달할 역사적 메시지가 훨씬 중요했을 겁니다. (23/07/05)

★★★

기타등등
알마를 연기한 마리아 메르세데스 코로이는 이 영화를 찍은 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나왔으니 얼굴이 낯익으실 거예요.


감독: Jayro Bustamante, 배우: María Mercedes Coroy, Margarita Kenéfic, Sabrina De La Hoz, Julio Díaz, María Telón, Ayla-Elea Hurtado, Juan Pablo Olyslager, 다른 제목: The Weeping Woma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767168/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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