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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와 마크는 남매이다. 대학생인 그들은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바닷가의 오두막에서 단 둘이 밤을 보낸다. 그들은 시험삼아 섹스를 해 보면 흥미롭고 재미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소한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줄리는 이미 피임약을 복용했지만 마크 역시 안전을 위해 콘돔을 사용한다. 두 사람 모두 섹스가 즐거웠지만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을 특별한 비밀로 간직하고 그로 인해 서로 한층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섹스를 해도 괜찮았는가?>

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면서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 여러가지 이유를 댔습니다. 동종번식의 위험, 사회적으로 위험한 행동 등의 이유를 댔지만 위의 시나리오에서는 피임을 했고 그 일이 비밀로 부쳐졌다는 사실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그 이유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댔지만 결국 응답자들은 설명할 수 없지만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이트는 이 반응을 도덕적 말막힘(moral dumbfounding)이라고 부르며 불쾌하지만 피해를 주지 않는 비슷한 시나리오들을 제시합니다.

<한 주부가 옷장을 청소하다가 낡은 성조기를 발견한다. 더 이상 그 국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것을 찢어 욕조를 청소하는 걸레로 사용한다>

<한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슈퍼마켓에 들러 죽은 닭을 산다. 그러나 요리하기 전에 그 닭과 성관계를 가진다. 그런 다음 닭을 요리해서 먹는다>

이것 말고도 개고기 식용에 대한 시나리오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별 문제가 되지 않기에 제외했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핑커는 인간은 도덕적 착각을 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덕적 감정은 교육되거나 초월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설계된 장치이기 때문에 착시와 환청을 경험하는 눈과 귀와 같은 기관처럼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강한 도덕적 확신을 느끼고, 사후에 그 확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이 확신은 도덕적 판단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도덕적 감정이라고 부르는 정신 기관들의 신경학적.진화적 설계에서 발생한다는거죠.

얼마전에 수간과 관계된 글이 올라왔었는데 죽은 닭과 성교하는 남자를 두고 같은 질문을 한다면 반박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답변한 것처럼 살아있는 동물과 관계한다면 동물학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동물을 이용했고 그것을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한게 아니라 양식으로 이용했다면 문제될게 없습니다. 또 다른 분은 "동물의 존엄성도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도 죽은 동물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죠. 식량으로 삼기 위해 동물의 존엄성을 잠시 무시하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은 동물을 다양한 용도로 이용합니다. 각종 의약품부터 화장품, 옷, 신발 등 각종 생필품부터 시작해 오락적인 용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합니다. 이런 행위가 죽은 닭과 성교하는 것보다 특별히 더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불쾌감을 느끼며 잘못된 행동이라고 설명하려고 하는 분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도덕이 인간만의 것이며 변치않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죠. 동물들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도덕이 있습니다. 그 역시 진화적 적응의 방편으로 발달 되어온 것이죠. 수렵채집 사회에서 형성된 도덕 관념으로는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들을 제대로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여러 도덕적 근거를 들어서 반대를 했습니다만 현재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죠.

인간이 도덕적 착각을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성인의 사적인 행위를 보고 열심히 잘못을 찾아내려는 행동 속엔 이런 착각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강하게 비난하는 행위도 신경학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줍니다.

문맥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입니다만 얼마전에 충격적인 일본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성 인간과 개의 관계(물론 애완동물 이상의 관계입니다)를 다룬 만화인데 충격적인 건 그 소재가 아니라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으나 개와 인간과의 관계가 아름다우면서 슬프게 다뤄집니다. 말도 안되는 내용도 있고 역겹게 볼만한 내용도 있지만 보고 난 뒤 전체적으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에 스탕달 신드롬을 언급하는 건 말도 안되고 거의 불경에 가깝겠지만 그 감정의 1/1000 정도 되는 감정은 느끼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이런 소재까지 만화화 될 수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런 내용을 그려낼 수 있는 만화가가 있는 일본에 대해서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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