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 장하준 비판 소개 (2-1) EH.NET의 [사다리 걷어차기] 서평

번역자: 김리벌

(법적 효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글에 대한 링크 외의 무단 전재 및 인용을 금합니다. 원문이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허락된 상태에서 쪼잔하게 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중동 따위의 류()에 의해 전유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니 존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문 링크:

http://www.eh.net/book_reviews/kicking-away-ladder-development-strategy-historical-perspective

 

서평자 Douglas Irwin (EH.NET)

2004-04-25

 

장하준은 워싱턴 컨센서스” –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권고되는 표준적인 정책들 에 대한 도발적인 비평을 축조하기 위해 경제사를 동원한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이 경제적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좋은 정책좋은 제도를 채택하여야 한다. 좋은 정책은 안정적 거시경제 정책,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자율화, 민영화와 규제완화이다. 좋은 제도는 민주적 정부, 재산권(지적 재산권 포함)의 보호, 독립적 중앙은행,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및 금융기관이다. 세계은행과 IMF,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정책들을 사랑하였고 따라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지칭한다.

 

장하준은 현재의 고소득 국가들이 정작 19세기에 경제 성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에는 그러한 정책들을 추구하지 않았던 역설을 강조한다. 대신 이 국가들은 높은 관세와 부문별 산업정책을 도입하였고, 민주주의 개혁은 지연시켰으며, 서로의 산업 기술을 훔쳤고, 독립적 중앙은행도 없었고, 그런 식이었다. 따라서, 장하준의 관점에서는, 개발도상국이 이러한 정책 수단들을 채택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민주주의 개혁과 지적재산권을 채택하도록 재촉하는 고소득 국가들은 위선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아담 스미스(자유시장 주류)와 프리드리히 리스트(관리 개입 비주류)를 대립시키고 리스트의 편에 서고 있다. 장하준의 관점에서는 선진국들이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에게 아담 스미스의 정책들을 설파하지만 과거 그들 스스로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정책들을 추구하였다. 선진국들은 (프리드리히의 인상적인 표현으로) 그들이 부유해 지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고있으며, 그 대신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적 조건에 전혀 적합하지 않고 경제적 이해(利害)에 반하는 정책들을 개발도상국들에게 우격다짐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책은, 제도권 경제학과 국제기관들도 분명히 인지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우상파괴적 비판으로서의 높은 지위를 이미 획득하였다.

 

영국 캠브릿지 대학의 발전론’ assistant director인 장하준은 그의 얇은 책을 4개의 장으로 분할한다. 각 장은 현재 대표적인 선진국들(영국, 미국, 독일, 일본, 여타 유럽 국가들) 1세기 전에 추구하였던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 정책들을 개발도상국들에 강추하는 정책들인 워싱턴 컨센서스와 비교한다. 1장은 책을 소개하고 부유한 나라들이 과연 어떻게 부유해졌는가?”를 묻는다. 2장은 개발도상국들이 선진 공업국을 추격하기 위해 고안된 무역 및 산업정책들을 살펴본다(김리벌주: 원문 약간 부자연스러움). 3장은 제도들과 좋은 거버넌스에 초점을 맞춘다. 4장은 과거로부터의 교훈들로 결론을 짓는다.

 

장하준의 책은 도발적이고 흥미로우나 설득력은 부족하다. 장하준이 현재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극히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는 그가 제기하는 의문들에 관한 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그저 관여하지(engage) 않기로 선택했다. 예를 들어, 1부유한 나라들이 과연 어떻게 부유해졌는가?”는 그 주제에 대한 경제사학자들의 기존 작업과 논쟁하고 있지 않다. 해당 장이 제기하는 거대한 문제의식을 고려할 때, 독자들은 더글라스 노스-로버트 토마스의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 이나 네이던 로젠버그-. . 버드젤의 How the West Grew Rich: The Economic Transformation of the Industrial World (1986)과 같은 기념비적 저작들과 장하준이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기대하였을 지 모르겠다. 이 저작들은 경제 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치 시스템 및 넓게 보아 경쟁이 작동하게 하는 경제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러나 장하준은 이 저작들의 이러한 교훈들이 왜 오늘날의 개발도상국에는 연관성이 없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장하준은 제2장에서 유치 산업 진흥(그저 보호관세가 아님을 미연에 덧붙인다)이 대부분 나라들의 발전의 열쇠였다. …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은 경제 발전을 발동할 수 있는 역량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을 상세히 부연한다. 나는 이 주장이 두 가지 면에서 오류라고 생각한다. 유치 산업이 경제 발전의 열쇠였다는 것, 개발도상국들이 오늘날 그런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차단당하고 있다는 것.

 

어떤 무역 및 산업 정책들이 실행되었고 경제적 결과가 좋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결과가 바로 그 특정한 정책들 덕택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김리벌주: 원문 약간 부자연스러움. 비문인 듯.) 그러나 장하준은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접근법 이상으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 주지 않는다. 선진국들의 보다 넓은 제도적 기반이 경제 성장에 우호적이었기 했기 때문에 그들의 초기 정책들에 의한 왜곡 및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높은 식자율, 널리 분포된(분배된) 토지 소유권, 안정적인 정부, 사적 소유권의 안정성을 폭넓게 보장한 경쟁력 있는 정치 제도, 지역간 자유로운 상품 교역 및 노동 이동이 가능한 거대한 내부 시장 등을 보유한 매우 부유한 나라로 출발하였다.  이렇듯 압도적으로 호의적인 조건들이 있었기에 매우 비효율적인 무역 정책조차 경제발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언급한 대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개인들의 노력은 종종, 정부의 가장 큰 오류들에도 불구하고 개선을 향한 자연스러운 진보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

 

그러나 장하준의 이야기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이런 다른 요인들의 기여가 아무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유치 산업 진흥으로 귀결된다. 장하준은 말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보호주의가 국가 후생에 미치는 전반적 영향이 긍정적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으나, 보호주의 기간 동안의 미국의 성장률 기록에 따르면 그러한 회의주의가 하향 바이어스(bias, 偏倚)가 아니라면 적어도 과도한 조심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다시 한번,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correlation is not causation). 장하준은 보호주의가 성장에 기여했다는 증거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는 무역 정책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로와 메커니즘을 연구하지 않고 있으며, 그 경로와 메커니즘을 다른 요인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 및 메커니즘과 비교하지 않고 있다. 그는 유치 산업 정책의 비용과 편익의 크기를 추정하기 위해 ()사실적 (counterfactual) 분석을 수행하지 않는다. 폴 베어록 (Paul Bairoch) 류의 사고방식은, 관세가 높고 성장이 강했으면 그 관세와 성장 사이에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다는 식이다. 관세 정책의 효과가 미국 경제의 다른 측면들의 장점에 의해 삼켜진다든지 하는 다른 설명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없나 보다. 대신 장하준은 미국 경제는 최소한 일부 유치산업들에 대한 강력한 관세 보호가 없었다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다와 같은 무대뽀식 명제들을 제기한다.

 

그 함의는 제조업에 대한 보호가 부유한 국가들의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 브로드베리(Stephen Broadberry (1998))에 따르면 19세기말 미국이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영국을 추월한 것은 제조업 섹터의 생산성을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서비스 섹터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에 크게 기인한다. 브로드베리의 연구는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하준은 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많은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 성공을 그들의 무역 및 산업 정책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것들의 역할을 크게 과장하기 마련이다. 브로드베리와 다른 연구자들은 유럽에서 경제성장이 농업 부문으로부터 산업 및 서비스 부문으로의 자원 이동과 관계 있음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 무역 정책들은 이러한 자원 재배치를 지연시켰을 수 있다. 영국은 18세기말~19세기 초 직물 산업 중심으로 산업화되었는데 이 시기의 곡물법은 산업이 아니라 농업에 더 많은 노동과 자본을 묶어두었다. 비슷하게, 독일의 관세법은 (순수입 품목인) 농산물을 보호한 만큼 실제로 자원 이전을 지연시켰고 19세기말의 성장을 둔화시켰을 수 있다.

 

장하준의 접근법(방법론)의 더 광범위한 문제는 표본 추출 bias (sample selection bias) 이다. 장하준은 19세기 동안 성공한 나라들과 그 나라들이 추구했던 소수의 정책들만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19세기 동안 실패했던 나라들을 검토하지 않았고, 그들이 동일한 비주류 정책들을 더 강력하게 추구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보지 않았다. 이것은 허술한 과학적 역사적 방법()이다. 의사가 오래 산 사람들을 조사하고 그들 중 일부가 흡연자였음을 발견하였는데 오래 살지 못한 사람들과 그들 중에 흡연자 비율이 더 높은지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라. 관찰된 상관관계만으로 끌어낸 결론은 상당한 오도(誤導)의 가능성이 있다. 장하준은 또한 오늘날의 개발도상국들이 개입주의적 무역 및 산업 정책을 추구하지 못하는 정도에 대해서도 과장하고 있다. GATT와 같은 무역협정은 개입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는 국가들에 대해 별다른 장벽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1950~60년대에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수입 대체 광풍이 유행할 때 많은 국가들이 개입주의 정책을 추구하였다. GATT 18조는 정부가 선별된 산업 진흥을 포함한 개발 촉진 무역 수단들을 채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경험상 그런 정책들이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정책을 가이드 하는 데 있어 역사적 교훈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경제사학자는 없다. 관건은 어떤경제사가 적실(適實, relevant)한가 이다. (작년 EHA 회의에서 케네스 소콜로프의 장하준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평에서 이 점이 논의된 바 있다.) 오늘날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들에게 가장 적실한 경제사는 무엇인가? 바로 그 국가들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시행된 국가 주도의 수입대체전략의 실패인가 아니면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경험인가? 확실히 중국과 인도는 그들의 내향적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이에 답했다. 두 국가 모두 아직 워싱턴 컨센서스의 모든 요소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지난 일이십년 동안 경제를 규제하는 데 있어서 정부의 과중한 개입을 덜어 내면서 시장의 힘에 더 많은 역할을 허용함으로써 더 잘해왔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세계 무역과 투자에 보다 개방적이 되기로 결정하였고, 오랜 기간 보호받은 유치 산업들을 글로벌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과실을 거두고 있다.

 

먼 과거의 정책 교훈이 연관성 있다 하더라도, 미국 경제 성장의 보다 넓은 제도적 배경 및 오늘날의 많은 개발도상국과의 차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100년 전 미국의 경험에 바탕하여 정책 처방을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미국의 경우 정책결정자들이 심하게 파괴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경쟁력 있는 정치 제도 및 정부 제약이 방지할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거나 (정책 실패의 결과에도 실권하지 않거나),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갖고 있는 정부들은 해당 사회에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훨씬 더 큰 비용을 안길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흥미로운 질문들을 제기하며 도발하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장하준이 특정한 질문 예를 들어 보호주의 정책이 오늘날의 선진국의 성공을 어느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지 - 에 깊이 있게 초점을 맞추고, 경제사학자들의 작업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면 (작업과 보다 직접적으로 대결하였다면) 그는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 문헌: 브로드베리 (JEH)

 

더글라스 어윈은 다트머스 대학의 경제학 교수이다. 그의 최근 작업 중에는 “19세기말 관세와 경제 성장의 상관계수에 대한 해석” (AER), “19세기말 미국의 관세와 경제 성장”, “19세기 미국의 관세가 유치산업들을 진흥하였는가? 양철 산업 부문의 증거”(JEH) 등이 있다.

 

 

몇 가지만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0.     강조표시는 제가 임의로 한 것입니다.

1.     몇몇 분이 추측하신 것과 달리, 경제사는 주류 경제학의 매우 주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문헌이 쌓여 있고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학부 때 전공필수가 단 4과목이었습니다. 아마 한국의 모든 과 중에서 최소가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미시, 거시, 경제통계, 그리고 경제사였습니다.

 

2.     몇몇 분이 추측하신 것과 달리, 주류 경제학은 결코 제도의 중요성을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제도주의, 통화주의, 00주의와 같은 명찰 놀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관건은 어떤 제도가 왜 어느 만큼 좋고 나쁜지를 어떤 자료로 얼마나 타당한 논증 규범에 의해 보여주는가 입니다. 비주류가 더 좋은 논증을 가져오면 그것을 채택하면 됩니다. 비주류, 00주의라서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일관성 있게, “지식의 누적적 축적이 가능한 방식으로, 더 좋은 논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주류가 된 것이죠. (하지만 비주류가 좋은 얘기를 하면 수용이 됩니다. 누적적 축적의 틀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흡수해 버립니다.)

 

3.     주류 경제학이 무엇일까요? 과학이 무엇일까요? 경제학은 하나의 분과 과학으로서 아직 많이 미성숙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생각건대, 학문은 검증 가능한(testable, verifiable) 명제에 관한 논증을 제공해야 합니다. 

미국 경제는 최소한 일부 유치산업들에 대한 강력한 관세 보호가 없었다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다

이런 명제는 어떨까요? 이것은 검증 가능한 명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장하준이 이에 대한 논증을 제공하고 있나요? 이에 대한 평가에 있어 주류 경제학과 대중들 사이에 거대한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류 경제학이 폐쇄적인 것일까요? 글쎄요, 국사학과나 사회학과에서 학부생이 저런 식의 주장들로 구성된 기말보고서를 제출하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제 기준에서, 저것은 경제학자의 논증이 아닐 뿐 아니라 지식인의 논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말꼬리 잡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장하준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주저이며, 그 책은 기본적으로 저런 방식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대중들은 이를 읽고 장하준이 상당한 "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다른 책이나 논문에서도 위 문장과 같은, 그의 차별적인(distinct) 중심적 주제(thesis)에 대한 검증 가능한 논증은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있을 수가 없죠.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도 없고 자료도 없으니까요.

 

(그의 상식적인주장들은 (if any) 더 좋은 상식적인주장들이 쌓여있기 때문에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장하준은 상식밖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라고 장하준을 변호하시는데, 저런 명제도 상식에 포함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런 명제가 심심찮게 튀어나오고 상식적인 명제랑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차별적인 명제와 상식적인 명제를 동일한 방법론으로 논증(?)합니다. .. 이 난감함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     따라서 둘 다 불량입니다. 방법론이 불량이면서 결론이 좋은 경우가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장하준의 경우 전자의 불량에 의해 후자의 불량이 필연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부합되는 자료들만 취합해서 툭 던지는방법론이 어떻게 좋은 결론을 줄 수 있을까요?

 

5.     correlation is not causation. 이것은 모든 통계적 조사 방법론 강의 첫 시간에 나올 법한 기본 원칙입니다. 역사적 사건의 인과 관계에 관한 연구에서는 이 원칙의 큰아들 뻘인 원칙을 따로 얘기하곤 합니다. “Post hoc ergo propter hoc 을 조심하라.” 학부 1, 2학년 때 배우는 전필 경제사 과목의 강의노트 첫 장()에 적혀 있습니다.

 

 

(2-2) 에서는 서평자인 더글라스 어윈이 매우 매우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베리 아이켄그린 등과 공저한 논문의 한 섹션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의미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미리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39~47쪽에 있는 섹션입니다.

링크: http://www.nber.org/papers/w7195

 

그 전에 쉬어가는 겸해서 3가지 정도를 써볼까 합니다.

-       ()사실적 (counterfactual) 분석 에 대해 여러분이 흥미를 느낄 만한 간략한 소개

-       배진명의 하이에크주의에 대한 뻘스럽고 독창적인 해석 (배진명을 다시 읽어본 뒤 최종 결정할 예정)

-       비공개 (최종 결정 안 했음)

 

(3) 에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훨씬 짧은 서평과 sample selection bias 에 관한 간략한 논의를 덧붙일 생각입니다.

 

끝까지 가도 많은 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경험상 거의 잘 안 되더군요. 그래도 뭐 마지막 청춘의 봄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한 번 즐겁게 놀아보려고요(으응?).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s. 굳이 단락별로 원문과 번역문을 교차해서 배열할 필요는 없겠죠?

 

 

    • Post hoc ergo propter hoc 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셔도 의미를 아실 수 있겠습니다만, 위키피디아를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Post_hoc_ergo_propter_hoc

      매우 쉬운 영어로 되어 있고, 내용이 짧습니다. 예시는 물론이고, Pattern을 딱 4줄로 소개하고 있어서 유용합니다. 특히 See Also의 첫 번째 항목에 confirmation bias 이 있어서 반갑네요. (4)에서 장하준이 confirmation bias 가 심하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서평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송원근∙강성원의 보고서의 장단점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논의는 차후로 미루고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그 역시 일부 confirmation bias를 포함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반대편의 confirmation bias 에 기름을 붓고, 다시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게 되죠. 따라서 저는 논의 구도 자체를 조금 다르게 형성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방법론 얘기가 주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류 경제학자들 –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포함하여 - 도 오류를 범하고 confirmation bias를 범합니다. 어쩌면 위의 더글라스 어윈 및 참고문헌에서도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겠죠. 그러면? 간단합니다. 까면 됩니다. 주류/비주류/00주의/xx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열심히 까고 까이면서 옥석을 가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내용들, 충분히 검증된 내용들이 교과서와 주요 참고문헌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장하준은 그 자리에 끼지 못한 것이고요.) 따라서 현재와 같은 논쟁의 난맥상에서, 다시 교과서와 주요 참고문헌의 인용체계로 돌아가서 옥석을 가려보자는 것이 “지나치게 나이브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장하준을 ‘옹호’하시는 분들이 ‘장하준의 얘기가 교과서의 얘기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씀하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 ‘옹호’의 타당성의 “정도“ (강조)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지만요.)
    • 관심 있는 분 중에, 혹시 번역을 도와주실 분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3)은 번역이 다 되어 있는데, (2-2)와 (4)는 새로 번역을 해야 해서, 짬짬이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읽고 이해하는 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노동입니다;; 경제학 전공자일 필요는 전혀 없고, 위의 더글라스 어윈의 서평을 수월하게 해석하실 수 있는 정도의 정확한 영어 실력과 비교적 정확한 국어 실력만 있으면 됩니다. 제가 최종 감수(?)를 하겠다는 불쾌하실 수 있는 단서도 수용을 해주시면 좋겠고요.
    • 번역까지 해주셨군요. 이건 점심 먹고 읽어볼게요.
      김리벌님이 토론이나 설득을 원하신다면, 조금 더 차근차근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번에 소개해주신 송원근의 글은 그냥 읽고 수긍하기에는 대부분의 논점이 설득력이 약했다고 보는데요, 장하준 cs 송원근이 아닌 듀게 내부에서 토론이 필요하다면, 그냥 링크가 아닌 같은 글을 읽고 1:1 매칭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왕에 송원근이 챕터별로 장하준을 공격했으니, 우리도 챕터별로 따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요.
      김리벌님이 송원근과 완전히 입장이 같지 않으신 것 처럼, 저나 대부분의 사람들도 장하준에 목숨 걸지 않으니 이야기가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에요. 그냥 소개가 목적이시면 물론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되고요. 그냥 소개도 고맙습니다.
    • 오늘 소개한 글은, 지난번 글보다 훨씬 좋군요.
    • 사다리 걷어차기는 읽지 못했지만, 착한 사마리안을 읽은 바로 장하준의 논지가 무조건 적인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건 아니지 않았나요?

      현재의 자유개방 시장경제체제에서 아무런 내적기반이 없는 개도국들이 선진국들과 관세 정부의 지원등의 장치도 없이 경쟁하는건 불합리하다. 선진국도 옛날에 처음 커 나갈때는 다 이렇게 했지 않니... 그래서 책 제목도 사다리 걷어차기일테구요.



      중국의 개방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게 더 맞을것 같습니다만...중국이 처음 개방 할 때부터 전면적인 개방을 했어도 지금의 위치에 도달 할 수 있었을까요...;



      Selection vias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상에서 이 글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것 같아요.
    • 조금 딴이야기인데.. (올려주신 본문은 일하는 틈틈히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
      아래의 듀게글중『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 불온 서적에 지정되고..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서..
      장하준의 주장에는 박정희식 개발 독재에 손을 들어주는 부분도 상당한것 같은데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이것들은 무슨 불온서적을 책도 안읽고 지정했나 싶은...;;
    • 댓글에서 글씨 크기, 색상, 강조 표시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김리벌 바보”를
      1) 기본 크기 + 빨강 + 강조
      2) 한 단계 더 큰 크기 + 파랑
      으로 표시하는 코드를 알려 주실 분 계신지요?
    • 폰트 태그는 안먹네요... 볼드이탤릭은 되네요..
      [b]볼드[/b], [i]이탤릭[/i] 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는 <로 대치하세요..
    • 이 서평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수긍이 갑니다. 이 비판이 제시한 논문들을 제가 읽고 판단할 능력이 있었으면 좋았겠네요.

      그래도 장하준 쪽을 옹호해 보자면,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던 시기에, 지금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에 권고하는데로 자유방임주의를 했냐는 거죠.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나쁜 정책을 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기본기가 강해서 성장했다' 라고 하지만, 그건 바꿔 말하면 진짜 그런지는 경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시장주의와 관치경제를 섞어서 했다, 이것도 장하준 입장에서 충분한 반론은 아닐 걸로 보입니다. 장하준이 요구하는 것도 그 적절한 배합이기 때문에요.

      장하준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신뢰할 수 있는 정부, 많은 물적 인적 자원, 큰 시장 등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칩시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그런 게 부족한 나라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저런 조건이 안된 나라는 최선이 안정적인 정부를 세우고 방임하는 정도일까요? 여기서 수입대체는 대부분 실패했다는 비판은 좀 핀트가 안 맞는게요, 장하준은 수입대체에 촛점이 있는 게 아니라, 수출이든 수입 대체든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분야를 육성해야 된다는 거라 좀 핀트가 다르다고 봅니다. 장하준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의 경제가 수입대체는 아니었잖아요.

      며칠 전 바이커님 블로그에서 재밌는 연구를 봤는데요. http://sovidence.tistory.com/363
      남미와 아프리카 (그러니까 개발도상국들)의 노동력이 생산성이 높은 산업에서 낮은 산업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시장주의 경제학 입장에서도 비교우위를 입증하는 사례일테고, 장하준 입장에서도 인위적인 개입이 없으면 걔네는 평생 커피만 만들다 끝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이라고 볼 겁니다. 저는 후자 쪽에 더 방점을 찍게 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이렇게 쓰고 있는 게 거의 절대적으로 장하준이 제시한 데이터만 보고 하는 거라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죠.
      그 이상으로 논문 같은 걸 공부할 능력이나 시간과 유인이 없어요 ^^;;
    • 호레이쇼//

      첫 댓글에 대해.

      본문과 2개의 댓글을 읽어보시면 양해하시리라 생각하는데, 저는 이렇게 가는 것이 더 차근차근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무슨 얘기인지 더 와 닿으실 것 같습니다. 위에서 제가 “비공개”라고 한, digression은 호레이쇼님의 먼저 번 댓글 중 하나에 대한 잠정적 답변으로 생각한 것인데, 지금 단계에서 얘기하는 것이 좋은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나중 댓글에 대해서는 저녁에나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D-80//
      감사합니다. (2-2)에서 “선진국들도 옛날에 처음 커나갈 때는 다 이렇게 했지 않니…”에 대해 더 친절한 설명을 드릴 계획이니 (2-2)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위의 본문은 선진국들이 옛날에 했던 것 일부의 효과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고 있고, 지금이라도 그런 걸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별개의 질문을 드려봅니다.
      국가개입을 무조건적으로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인터넷 찌라시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얘기들 말고, 실제로 심각하게 논의되고 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논의 범위 안에서 말입니다. 하긴 무조건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인터넷 찌라시에도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전면적인” 개방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주장의 1차 자료를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도 전면적으로 개방하고 있는 근대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더글라스 어윈이 중국이 “처음부터” 전면적인” 개방을 했으면 더 성과가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지신다면 죄송합니다.
    • 폴 크루그먼은 2 페이지짜리 신문 기고문을 써도 공화당의 구체적인 누가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틀렸는지를 씁니다.
      그런데 장하준은, 더글라스 어윈이 지적하듯, 누구의 무슨 주장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결국 양쪽 모두 ‘무조건’ ‘전면적인’ ‘언제나’ 등의 “전칭 명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만 반복하는 수준에서 논의가 공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호 인용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한 가지입니다.


      장하준이 거명한 토마스 프리드먼만 제끼면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장하준은 학자라기 보다는 언론인입니다. 언론인이 학자보다 나쁜 건 아니죠. 그 기능이 다를 뿐. 폴 크루그먼도 뉴욕타임즈 지면에서는 언론인이라고 봅니다, 저는. 위에서 얘기한 이유로 장하준보다 좋은 언론인이죠. 그리고 토마스 프리드먼은 이미 제껴진 지 좀 됐습니다, 적어도 진지한 발전론 (Development Studies)의 장에서는요.

      따라서 장하준에 대한 평가의 한 축은 경제학적 논의라기 보다는 장하준이라는 언론인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 현상에 대한 담론 비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이쪽으로도 논의를 진행해 보기를 기대합니다.
    • 아울러 제가 이전 글에 추가한 댓글의 일부를 자기인용해봅니다.

      오히려 제가 몇몇 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본문에도 약간 암시했고요.
      장하준은 자신을 주류라고 생각할까요? 장하준은 여러분의 주류 순치적 장하준 해석을 좋아할까요?
      제가 답을 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 위 서평이 2004년 4월자임을 감안해 주세요. 무려 7년이나 지났네요. 그 사이에 발전론 내부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큰 변화인지 작은 변화인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이어지는 글에서 그런 변화를 일부 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4년 이 논평 이후로 EH.NET에서 장하준에 대한 추가적인 논평이 있었을까요? 제가 검색해 본 바로는 없습니다. 딱 한 번 논의된 것이죠. 왜 그런 것일까요? 이런 서평을 써도 대답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고, 레퍼런스도 없이 또 비슷한 얘기 툭 던지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 레옴//
      1. 볼드 태그 감사합니다.
      2. 말씀하신 내용은 장하준이라는 언론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언론 현상의 선정성과 일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모호함이 원인일 것입니다. 불온서적으로 지정하면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읽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면이 있으니까요.
      이상의 제 의견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한 정당화가 결코 아님을 밝혀둡니다.
      3. 제가 이따금 [느슨한 독서모임]에 대한 홍보글을 올려도 괜찮을까요? 선정 도서랑 같이 읽어볼 만한 글을 소개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요.
    • 일단 본문 다 읽었습니다. 엄밀하지 않은 질문이고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요 논지와도 좀 동떨어진 질문이 될수도있겠지만 저처럼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있을테니 몇가지 질문 겸 감상 남겨봅니다.

      1. 주류 경제학에서 장하준의 저작이 의미있는 주제로 토론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eh.net 에서 장하준에 대한 추가적인 논평이 없다는 것을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 토론할 가치도 별로 없는 과학적이지 못한 언론인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eh.net이 경제사 쪽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는 그런 곳인가요? 아는바가 없어서 다가오질 않네요.. 차라리 논문 인용횟수라던가 하는거라면 이해가 쉬울텐데요..
      또 소개해주신 Douglas Irwin의 리뷰에서 "이 책은, 제도권 경제학과 국제기관들도 분명히 인지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우상파괴적 비판으로서의 높은 지위를 이미 획득하였다."라는 부분이라던가 "작년 EHA 회의에서 케네스 소콜로프의 장하준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평에서 이 점이 논의된 바 있다"라는 부분을 보면 이슈가 되고있는걸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사소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여쭤봅니다.

      2.
      "리뷰어는 개발도상국들이 오늘날 그런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차단당하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가?"
      이 부분은 리뷰가 크게 다가오지 않네요.. 여러가지 선진국 위주의 국제 무역 제도들이 보호무역을 굳이 차단하고 있는게 사실 아닌가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건가요..? 댓글보면 이부분에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부연 설명해주실 것도 같습니다만..

      3.
      정말로 "유치 산업이 경제 발전의 열쇠"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Douglas Irwin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The Rise of the Western World 이나 How the West Grew Rich: The Economic Transformation of the Industrial World과 같은 기념비적 저작들을 읽어보질 못했으니 판단은 보류합니다만.. 장하준의 글에서 이부분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에는 수긍할 수 있겠네요.

      4.
      장하준이 학자라기보다 언론인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가고 어느 정도 수긍도 됩니다. 다만 학자중에서도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엄밀함을 담당하는 학자도 있고 문제에 접근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당하는 학자도 있는거죠. 특히 대중적인 책들 위주로 저작활동을 하다보면 그런 과학적인 엄밀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겠죠. 정말 그 새로운 아이디어가 맞는지 과학적으로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디어 위주의 저술이라고해서 그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보는것 또한 일종의 bias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주류 순치적 장하준 해석이라는건 어떤건가요?? 몰라서 여쭤보는거에요.
    • 주장이 틀렸다는게 아니라 논증이 결여되었다는 주장이군요. 근데 사다리 걷어차기가 장하준의 유일한 저작이거나 학술 논문인건 아니지 않나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이 문제의 본질까지 깊숙히 들어가지 못한 얄팍한 저널리즘 북이라는 것과 장하준이라는 학자가 경제학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다른 영역인것 같습니다.
    • 느슨한 독서모임 홍보야 얼마든지 해주세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
      그렇지 않아도 관련된 참고서적들도 좀 읽어보려고 챙겨두긴했는데 3월에는 제가 수습해야할 일들이 많아서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ㅡ.ㅜ;
    • 김리벌 / 1. 주류경제학에서 장하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님의 단언은 Douglas Irwin의 서평의 초반부에서 벌써 부정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님의 '주류경제학에서 장하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제는 제가 보기에는 장하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발적인 선언이상으로 더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것같습니다. 게다가 님은 님께서 생각하시는 주류경제학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정교한 성실한 학문 방법론적 틀을 강조하시고 그 부분을 장하준에 대한 비판의 요소로 생각하신다면 먼저 그 비판부터 기본적인 정의와 명제에 대해서 충실해야 합니다.
      논문을 쓰기위해서는 왜 그 논문을 써야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예비논문부터 먼저 써야하는 경우가 선진국의 인문학계에서는 심심찮게 존재합니다.

      2. 방법론에 관련해서 장하준을 비판하는 것은 관련업계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주로 모이는 이곳 게시판에서는 좀 난해하고 따분한 의제가 될 것 같습니다만, 정작 장하준 본인도 신자유주의 도그마를 각종 근거와 통계를 동원한 방법론으로 비판해서 큰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당연히 장하준 본인도 동일하게 비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게 학문이니까요.
      그렇지만, 학문적 방법론을 비판하는 김리벌님의 입장역시도 엄격한 객관성과 학문적 중립성을 은근슬쩍 알리바이로 삼으면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다면 곤란합니다. 이미 김리벌님의 주류경제학과 장하준의 관계에 관한 단정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선언입니다.
      주류경제학과 장하준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장하준을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파토스를 내포하고 있는 행위라고 여겨집니다.
      어차피 주류경제학의 역사도 정치적인 갈등과 파토스가 항상 깔려왔죠. 같은 시카고대 동문인 프리드먼과 새뮤얼슨의 라이벌 관계도 그렇고, 프리드먼과 새뮤얼슨의 활발한 저널리즘적 활동도 결국 동기는 서로에게 지지않겠다는 정치적인 열정이었습니다. 폴 크루그먼의 명백한 정치적인 저널리즘 활동에 김리벌님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처럼 지금 미국의 담수파와 해수파 학자들도 정치적 저널리즘에 투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혹시 김리벌님이 정치적 열정과 정치적 위치를 학문적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신화적 방패속에 감추어놓은 채로 장하준의 학문적 방법론만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반칙입니다.

      3.
      장하준이 스스로를 주류경제학이라고 생각하는가가 우리같은 제3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공황때 무력한 고전 경제학에 대한 케인즈의 생각과 감정과는 관계없이 고전경제학의 수리적 체계로 케인즈를 통합하고 절충시킨 폴 새뮤얼슨처럼 후학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서로 다른 경로를 걸어온 발걸음들이 정상에서 서로 만나서 합일하는 광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하준의 저작과 인터뷰들은 항상 주류경제학자의 연구결과과 통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장하준의 결론들은 (결론을 내리는 방법적 과정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상당수가 주류경제학자들의 결론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단지 장하준의 '주류경제학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근거로 해서 장하준은 주류경제학가 아니고, 주류경제학에서 배제되어야한다고 김리벌님이 선언하신다면 경제학의 본류인 폴 새뮤얼슨도 대공황때 시카고 대학 교실에서 배우는 고전경제학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회의를 했었으니 주류경제학자라고 볼 수가 없겠군요.

      4. 무엇보다도 김리벌님께서는 주류라는 말을 혼용하고 계십니다. 장하준이나 비정통주의 학자들이 말하는 주류경제학은은 애덤 스미스부터 기원한 고전경제학을 말합니다.
      그런데, 김리벌님은 주류 경제학을 경제학자들의 소사이어티學團의 집합체라고 정의내리는 듯 싶군요.
      장하준은 경제학 學團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김리벌님의 발언은 그래서 주류경제학에 반감을 가진 장하준의 입장을 근거로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타 아이돌을 폄훼하는 일부 극성팬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 누악님이 따로 글을 쓰셨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board/1891421


      겨자님이 따로 글을 쓰셨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board/1891169

      전자에는 댓글을 남겼고, 후자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한 번 쓰든지 할 계획입니다. 재미있는 논점이 많은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 세간티니//
      간단하게만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주류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정의했고, 항상 일관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주류 물리학, 주류 화학, 주류 천문학은 무엇일까요?
      공통적으로 보는 교과서와 주요 학술지의 상호 인용 체계, 학자들의 소사이어티 아닐까요?
      다른 전공자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감정하고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아주 좋은 정의 같은데요?

      "주류"라는 말에 상당히 집착하시는 것 같은데, 그럼 주류라는 말을 안 쓰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뭐 대단한 특권적 의미로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교집합 70% 동네, A 동네라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A파", "갑파"로 구분하고, 장하준을 A라고 할 지, 갑이라고 할 지는 세간티니님이 정하셔도 되겠습니다.
      아니면, 장하준을 주류 제도주의 경제학자, 더글라스 어윈을 비주류 제도주의 경제학자라고 하셔도 좋겠네요.

      앞으로도 저는 제 정의를 일관되게 사용할 생각입니다.
      이 정의에 해당하는 이름을 세간티니님이 지어주시면 100% 수용하겠습니다.
      "꼴통 경제학자들" 이런 것도 괜찮습니다. "교과서-학술지 경제학자들"도 괜찮고요.

      저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제가 하는 얘기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대충 말해서, 폴 크루그먼과 The Economist의 사이 어디쯤,
      선거 때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계열에 투표, "노회찬에 대한 후보 단일화 요구 = 뻘소리" 라고 생각 정도,
      조중동은 한국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 한나라당 일당은 그 다음 큰 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위의 얘기도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것들은 더 이해가 안 가네요.

      세간티니님에게 장하준은 아이돌인가 봐요?
    • 김리벌 / 장하준을 비판하려면 정당하게 그의 주장을 가지고서만 비판하세요.
      장하준이 주류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는 님의 주장은 한때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의 에디터로 일했던 장하준을 삼류잡지 에디터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던 모 서울대 교수의 궤변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장하준이 주류 학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님의 주장을 입증하시려면 SSCI(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급 학술지에 실린 횟수라도 제시하면서 장하준을 까든가 하셔야죠.
      아무런 근거없이 김리벌님 본인의 경제학 전공이력을 지적인 권위로 암시하면서 거의 대부분 경제학과 무관한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이 듀게에서 특별한 근거없이 장하준은 별볼일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 누가 믿겠습니까?
      님이 퍼오신 Douglas Irwin의 서평은 오히려 장하준의 문제적 명성만큼은 확실히 높이 사고 있잖습니까?
      저는 님의 근거없는 주류 운운설보다는 차라리 뮈르달상, 레온티예프상 최연소 수상경력과 국내 최초의 SSCI급 학술지인 연세대의 Global Economic Review(GER)의 편집인이기도 한 장하준의 확실한 경력을 더 믿겠습니다^^

      이번 경제위기로 각광을 받은 라구람 라잔 교수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나 독자적인 수리모델이나 이론적 틀을 갖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경제학자들로 동료 경제학자들에게 선정을 받았습니다.
      장하준 교수가 독자적인 이론과 수리모델을 가진 학자가 아니기때문에 노벨 경제학을 수상하는 것은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물론 사람의 미래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말이죠....), 라구람 라잔 교수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만큼의 대중적 명성과 동료 학계의 신뢰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장하준의 주장이 잘못되고 사실에 맞지않는다면 그 주장을 비판하셔야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장하준 캠브리지대(대학순위 3위) 교수를 세번이나 탈락시킨 그 서울대(대학순위 50위) 교수님들처럼 덮어놓고 듣보잡이라 폄하부터 하시면 아이돌 팬클럽 수준의 논의밖에 더 되겠습니까?
    • 예전에 스크랩했는데 지금 본문을 읽었습니다. (댓글은 나중에 읽으려고요.)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양동휴 선생님으로부터 경제사 배우셨나요?
      "“Post hoc ergo propter hoc 을 조심하라.” 학부 1, 2학년 때 배우는 전필 경제사 과목의 강의노트 첫 장(章)에 적혀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보고 반가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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