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아노 바이노 Mariano Baino

주연
루이즈 솔터....엘리자베스
Louise Salter....Elizabeth
베네라 시몬스....사라
Venera Simmons....Sarah
안나 로즈 핍스....테레사
Anna Rose Phipps....Theresa
마리야 캅니스트....수녀원장
Mariya Kapnist....Mother Superior
발레리 바셀....어부
Valeri Bassel....Fisherman
파벨 소콜로프....보트 주인
Pavel Sokolov....Boat Owner

엘리자베스

네, 잘못 읽으신 게 아니에요. 마리아노 바이노의 [다크 워터스]는 1994년작입니다. 90년대 중반에 나온 이탈리아 호러죠. 겨우 10여 년밖에 안된 젊은 영화이고 바이노의 첫 장편작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얼마만큼 이탈리아 호러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리아노 바이노는 이탈리아 감독이지만, 이 영화에 투자된 이탈리아 영화계의 인력의 비율은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아요. 바이노와 몇몇 영국인들이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그 동네 현지 스텝들과 함께 저예산으로 아슬아슬하게 찍은 영화죠. 바이노의 경력을 읽어봤는데, 그에겐 이전 세대 이탈리아 호러감독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맥 링크도 없습니다. 완전히 신세대인 거죠. 딱하게도 그는 그 이후 10년 동안 장편 영화를 못 만든 모양인데, 그래도 지금 진행 중인 계획이 몇 편 있고 이번 [다크 워터스]의 특별판 DVD를 낸 노셰임에서 뒤를 밀어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의 신작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인적 기반이 어떻건, 마리아노 바이노가 자신을 이탈리아 호러감독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다크 워터스]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호러영화예요. 영어 더빙이 어색하지 않을 뿐,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지요. 광기어린 잔혹한 폭력, 장엄한 고딕 분위기, 논리 따위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스토리 전개... 이건 그의 자연스러운 개성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인 뿌리찾기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큽니다.

이 영화에는 또다른 뿌리가 있으니... 그건 H.P. 러브크래프트입니다. 코멘터리를 아직 듣지 않아, 바이노가 이 이름을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고대의 괴물을 숭상하는 비밀집단이나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묘사는 [The Shadow over Innsmouth]에서 그냥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보면서 스튜어트 고든의 [데이곤]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그냥 우연일 수는 없을 거예요.

영화의 무대는 동유럽으로 추정되는 초라한 나라의 외딴 섬에 있는 수녀원입니다. 영국인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죽어 유산을 상속받은 뒤, 아버지가 20년 동안 기부금을 보냈고 자신도 어린 시절 7년을 보낸 수녀원을 찾아가죠. 그 수녀원에서는 친구인 테레사가 먼저 머물고 있었고요. 하지만 테레사는 수녀원 지하에서 벌어지는 고대 의식을 엿보다가 살해당하고 수녀원에 도착한 엘리자베스에게도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디선가 미치광이 수녀들이 한 명씩 나타나 칼과 사슬을 휘두르며 그녀를 죽이려 하는 거죠. 이 수녀원에서 엘리자베스의 유일한 지원군은 셜록 홈즈의 팬인 견습수녀 사라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과연 사라를 믿어도 될까요? 수녀원 지하 사방에 흩어져 있는 부적 조각들의 정체는 뭘까요? 수녀들의 목표는 뭘까요?

이미 영화를 봤으니 제가 여기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겠죠. 조금은 알아요. 하지만 다는 모르겠군요. 제 이해력 탓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흐릿한 거죠. 우린 그냥 막연하게 기본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뿐, 구체적인 디테일은 끝까지 확인하지 못합니다.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긴 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게 의도적인 것 같지는 않아요. 바이노가 직접 담당한 편집은 무척 거친 편이라 종종 꼭 필요한 정보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걸요. 풋내기의 경험 부족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 풋내기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시간과 돈에 쫓겨가며 허겁지겁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어야 했으니, 그 거친 느낌은 이해가 가고 어느 정도 용납도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것은 구체적인 스토리나 논리가 아니라 그것들이 적당히 섞여 가며 만들어내는 악몽과도 같은 분위기입니다. 여기서 바이노는 흥미진진한 설정들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내고 있지요. 수녀원 지하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그림을 그리는 눈먼 화가와 같은 것들 말이죠. 우크라이나의 스텝들이 만들어낸 수녀원도 근사한 배경이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몽유병자의 꿈과 같은 폭력과 추적도 보기 참 좋네요. 다른 이탈리아 영화들과는 달리 배우들도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서 폼을 망치지도 않고요. 이런 식의 비교는 좀 싱겁지만, 전체적으로 아르젠토보다는 바바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아직 전 마리아노 바이노의 스타일을 완전히 익히진 못했어요. 하지만 이 사람이 만든 호러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그것들을 보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다크 워터스]만으로도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기엔 충분하지만요. (06/10/13)

DJUNA

기타등등

마리아노 바이노의 공식 페이지는 여기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