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주연
데이빗 헤밍즈....마커스 데일리
David Hemmings....Marcus Daly
다리아 니콜로디....자나 브레지
Daria Nicolodi....Gianna Brezzi
가브리엘레 라비아....카를로
Gabriele Lavia....Carlo
마샤 메릴....헬가 울만
Macha Méril....Helga Ulman
에로스 파니....칼카브리니
Eros Pagni....Calcabrini
줄리아나 칼란드라....아만다 리게티
Giuliana Calandra....Amanda Righetti
피에로 마지니....바르디
Piero Mazzinghi....Bardi
클라코 마우리....조르다니 교수
Glauco Mauri....Professor Giordani
클라라 칼라마이....카를로의 어머니 (마르타)
Clara Calamai....Carlo's Mother (Martha)
알도 보나마노....카를로의 아버지
Aldo Bonamano....Carlo's Father

(기타등등 끝부분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크 데일리

[딥 레드]는 가장 모범적인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입니다. 아르젠토라는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단 한 편 고르라면 [딥 레드]가 가장 만만한 선택이죠. 히치콕에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그런 것처럼요.

영화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지알로 영화풍입니다. 도입부에 초심리학협회 모임 장면이 나오고 첫번째 희생자가 살인범의 정체를 꿰뚫어본 초능력자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디테일까지 따질 필요는 없겠죠. 하여간 영화의 주인공인 영국인 재즈 피아니스트 마크 데일리는 그 살인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신문기자 자나 브레지와 함께 사건의 비밀을 캐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동안 사건의 열쇠를 쥔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당하고요.

아르젠토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스토리 자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논리적 모순이 발견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연쇄살인범 추적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통에 영화가 길고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총상영시간은 126분인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길 필요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20여분을 잘라낸 미국판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크와 자나의 로맨스 같은 건 정말 민망할 정도로 서투니까요. 마크는 무책임한 아마추어 탐정이어서 종종 고함을 질러주고 싶을 정도고요.

그러나 이 영화의 스토리를 완전히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여기엔 아르젠토만이 뿜어낼 수 있는 어떤 기형적인 불쾌함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잔인무도한 어린아이의 비틀린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 영화의 살인범이 표출하는 사디즘은, 결말 전까지 철저한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질감과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범인의 얼굴이 밝혀질 때 실망스러울 정도죠. 솔직히 그렇게까지 이치에 맞는 해결책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아요.

물론 이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스타일입니다. 스토리는 아르젠토가 장려한 와이드스크린 화면 위에 뿌려대는 핏빛 살인의 핑계에 불과하죠. 살인 자체의 강도는 최근 나온 영화들에 비해 특별히 강할 것도 없지만, 번쩍이는 칼날과 가죽 장갑, 부서진 유리 조각, 미친 인형, 물감 피로 구성된 난도질의 미의식은 여전히 남아 이 영화에 바로크적인 질감을 부여합니다.

이런 질감은 마크가 서툰 탐정 노릇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남아 영화에 불쾌한 맛을 더해줍니다. 종종 영화는 살인 중간중간에도 불길한 단서들을 들이대며 관객들의 무의식을 자극하기도 해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그림인데, 그렇게 세련되게 다듬어진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일단 의미가 밝혀지면 [딥 레드]의 불쾌한 사건들에 대한 완벽한 호러영화식 설명이 됩니다.

[딥 레드]는 반은 따분하고 반은 흥미진진하며 전체적으로 불쾌한 영화입니다. 아마 아르젠토의 팬들은 이 조합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영화의 지루함을 일반 관객들이 견뎌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하긴 그들이 견뎌내지 못한다고 해서 팬들이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을 잃는 것도 아닐테니. (04/08/09)

DJUNA

기타등등

1. 데이빗 헤밍즈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자기 일도 아닌 살인사건에 매달리는 건 [블로우 업]의 후유증일지도 모릅니다. 다리아 니콜로디와 아르젠토는 이 영화를 통해 만났습니다. 아르젠토와 고블린의 공동 작업이 시작된 것도 이 영화부터고요.

2. 이 영화의 살인범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전 아르젠토의 여성살인범들이 그럴싸하게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이 모든 학살들이 지극히 남성적이고 무엇보다 그들의 손이라고 나오는 게 장갑 낀 아르젠토의 손이잖아요. 이럴 때 마다 전 여자 옷을 입고 진하게 화장을 한 아르젠토가 칼을 휘두르며 비명을 질러대는 여자들을 쫓아가는 광경을 상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