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주연
스티븐 웨버....프랭크 스파이비
Steven Weber....Frank Spivey
캐리 앤 플레밍....제니퍼
Carrie Anne Fleming....Jenifer
보 스타....찰리 서장
Beau Starr....Chief Charlie
브렌다 제임스....루비
Brenda James....Ruby
신시아 개리스....로즈
Cynthia Garris....Rose
해리스 앨런....피트
Harris Allan....Pete
재스민 찬....에이미
Jasmine Chan....Amy
줄리아 아코스...앤 윌커슨
Julia Arkos....Ann Wilkerso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랭크

다리오 아르젠토와 같은 스타일리스트를 평가할 때 가장 귀찮은 것은, 그가 그 스타일에서 벗어나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 동안 유지했던 통제력을 어느 정도 잃어도 마찬가지고요.

내용만 본다면 [제니퍼]는 여러 모로 전통적인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라고 부르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일단 아르젠토는 이 영화의 각본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브라이언 존스의 그래픽 스토리를 주연배우 스티븐 웨버가 각색했지요. 당연히 아르젠토식 가죽장갑을 낀 연쇄살인마도 나오지 않아요.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원색의 향연도 등장하지 않고요. 결정적으로 살인장면들이 그의 기존 영화들과 다릅니다. 날씬한 칼질의 살인 장면이 내장이 터져 나오는 식인 장면으로 대체되지요. 그래도 클라이디오 시모네티의 음악과 번뜩이는 식칼과 같은 것들이 여전히 아르젠토식 분위기를 만들어주지만요.

그렇다면 왜 아르젠토는 이 단편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글쎄요. 제 생각엔 제니퍼라는 존재 자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는 학살당하는 아름다운 여자들만큼이나 뒤틀린 여성 괴물의 이미지에도 매료되어 있었죠. 제니퍼는 그 극한인 셈입니다.

네, 이 영화의 제니퍼는 괴물입니다. 검고 커다랗고 흉칙한 눈과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 입을 가진 여자죠. 말도 못하고 하는 짓은 꼭 동물 수준입니다. 주인공인 형사 프랭크는 제니퍼를 죽이려던 남자를 쏴 죽이고 정신병원에 들어간 그녀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그가 죽였던 남자를 그토록 절망적인 선택으로 몰고갔던 제니퍼의 힘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게 됩니다. 이 영화가 피할 수 없는 순환구조로 끝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제니퍼]는 혐오라는 감정을 작정하고 관객들의 입속에 쑤셔넣는 영화입니다. 프랭크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니퍼를 혐오스럽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에게 매료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그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혐오스러운 거죠. 그는 여전히 제니퍼를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돌보고, 섹스를 하고, 그녀가 죽이고 먹어치운 사람들의 시체를 처리합니다. 그를 지탱하던 마지막 실 한가닥이 탁 끊어지기 전까지는요.

굉장히 야비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 존스의 이 이야기는 아르젠토와 어울립니다. 아르젠토는 평생 동안 인간의 기형적인 정신과 그것이 투영된 비정상적인 폭력에 매료되었던 남자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니퍼]는 아르젠토 영화의 해설판처럼 보이기도 해요. 제니퍼는 아르젠토 살인마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욕망의 상징인 셈이죠. [제니퍼]가 여전히 아르젠토의 변태스러운 필모그래피에서 당당하게 자기 위치를 주장할 수 있는 작품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06/08/28)

DJUNA

기타등등

1. 제니퍼가 고무 풀장에 꽃을 던지는 이웃 소녀를 만나는 장면은 [프랑켄슈타인]의 잔인한 패러디지요.

2. 게시판에서 Q님은 아르젠토의 엉터리 연기지도와 심리묘사에 대해 지적하셨고 그건 백번 옳지만, 그런 무심함이 그가 다루는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군요. 능력부족에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절대로 설명불가능한 기형적 욕망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끌려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데에는 이처럼 이상적인 환경은 없거든요.

3. 영화를 보면서 계속 [키즈 인 더 홀]의 한 에피소드를 떠올렸습니다. 거기서 케빈 맥도널드는 뚱뚱하고 못생긴 가정부랑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그 사람의 못생긴 남편과 쓰리섬까지 하지요. 속으로 끊임없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이 사람(들)은 전혀 내 타입이 아닌데!"라고 외쳐대면서요. [제니퍼]도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보면 이 작품도 배꼽잡는 코미디죠. 아르젠토가 그걸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