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핀처 David Fincher

주연
조디 포스터....멕 앨트먼
Jodie Foster....Meg Altman
크리스틴 스튜어트....사라 앨트먼
Kristen Stewart....Sarah Altman
포레스트 휘테이커....번햄
Forest Whitaker....Burnham
드와이트 요컴....라울
Dwight Yoakam....Raoul
제러드 레토....주니어
Jared Leto....Junior
패트릭 바쇼....스티븐 앨트먼
Patrick Bauchau....Stephen Altman
앤 마그누슨....리디아 린치
Ann Magnuson....Lydia Lynch
이안 부캐넌....에반 컬랜더
Ian Buchanan....Evan Kurlander
앤드루 케빈 워커....졸린 이웃
Andrew Kevin Walker....Sleepy Neighbor
폴 슐츠....키니 경관
Paul Schulze....Officer Keeney
멜 로드리게스....모랄레스 경관
Mel Rodriguez....Officer Morales

사라와 멕

[패닉 룸]은 데이빗 핀처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야심이 적은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은 성공작이건, 실패작이건, 정상적인 장르 영화인 적은 없었습니다. 늘 더 하거나 덜 하면서 핀처 특유의 일그러진 개성을 묻고 있었죠. 그러나 [패닉 룸]은 모범적인 장르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식을 따르는 영화지요. 아마 핀처와 다리우스 콘지, 조디 포스터와 같은 거물들이 이름값을 날리며 소문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훨씬 가벼운 영화 대접을 받았을 겁니다.

영화는 한마디로 [나 홀로 집에] + [어두워질 때까지] + [다이 하드]입니다. 막 이혼한 멕 앨트먼은 딸 사라와 함께 맨하탄에 있는 고급 주택에 입주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막 잠자리에 들자마자 세 명의 침입자가 집 안으로 들어오죠. 멕은 딸과 함께 3층에 있는 안전 구역 '패닉 룸'으로 달아납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하필이면 그 침입자들이 원하는 물건이 그 '패닉 룸' 안에 있네요. 악당들은 모녀를 밖으로 유인하려 하고 멕과 사라는 침입자를 몰아내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영화는 체스 게임과 같습니다. 패닉 룸 안의 멕과 사라, 패닉 룸 밖의 세 악당들은 모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과 게임을 해야 합니다. 다섯 명의 캐릭터들은 모두 체스말처럼 각자의 역할과 장단점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문제 제기와 해결의 연속이고요. 이야기의 설정과 진행 방식이 공식적이라는 것은 여기서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애당초부터 규칙과 판이 고정된 게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영화는 매우 히치콕적이기도 합니다. 뉴욕의 마천루 앞에 떠있는 컴퓨터 그래픽 크레딧부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풍이지요. 고정된 공간 안에서 거의 완벽한 3일치의 드라마를 선보인다는 설정 역시 히치콕이 좋아했을 법한 아이디어입니다.

데이빗 케프의 각본은 그냥 정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적절하게 묘사된 캐릭터들이 모두 자기 역할을 하고 있고 서스펜스도 잘 짜여진 편이지만 특별히 창의적이 되려는 시도는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비교적 좋지만 그렇게 날카로운 각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특히 결말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서스펜스의 강도를 고려해보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핀처와 콘지(그리고 그의 작업을 물려받은 콘래드 W. 홀)는 케프보다 영화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패닉 룸]은 스타일의 성찬입니다. 컴퓨터 그래픽과 기존 스태디 캠의 도움을 받아 건물 안을 날아다니는 카메라는 침입자들이 벌인 난장판에 오히려 신이 난 듯 합니다. 이들의 영화들이 종종 그렇 듯 [패닉 룸]도 스타일이 스토리 라인을 압도할 때가 많습니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영화가 적당한 속도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조디 포스터는 오래간만에 적역을 맡았습니다. 이 사람의 강하고 분명한 연기 덕택에 멕은 아주 그럴싸한 스릴러 주인공이 됩니다. 사생활 보호에 필사적인 자연인 포스터의 이미지도 캐릭터에 적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고요. 원래대로 니콜 키드먼이 했다면 전혀 다른 멕이 나왔겠지만, 포스터의 멕이 상당히 좋으니까 아쉬워할 건 없습니다. 사라로 나오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군요. 전 이런 우울한 톰보이 캐릭터에 무조건 약해지는 구석이 있거든요. 여기서는 제가 포스터와 스튜어트가 연기한 멕과 사라의 관계 묘사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 정도만 밝혀두겠습니다. 세 악당들은? 모두 좋은 배우들이고 다들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는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포레스트 휘테이커가 연기한 번햄은 꽤 재미있는 캐릭터였고 그와도 어울렸지만 말입니다.

핀처에게서 무언가 색다른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은 [패닉 룸]을 보고 좀 실망했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장르물에는 늘 자기만의 가치가 있는 법이고 핀처가 늘 관객들의 신경을 긁는 영화만 만들라는 법도 없습니다. 게다가 야심이 없어지자 전체적으로 이전 영화들보다 훨씬 매끄러운 작품이 나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이걸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각자의 취향에 달린 것이겠지만요. (02/06/05)

DJUNA

기타등등

1. 위에서도 말했지만 원래 멕 역은 니콜 키드먼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물랑 루즈] 때 입은 무릎 부상이 생각 외로 커서 조디 포스터에게 넘어갔다지만요. 참, 니콜 키드먼은 멕 남편의 여자 친구 전화 목소리로 잠시 카메오 출연한답니다.

2.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살짝 중성적으로 생긴 아이이긴 한데, 그래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배우를 남자 아이로 착각한 걸까요? 미국 시사회 때도 영화 초반에 '사라'라는 이름이 불려지자 놀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관객들이 자막에 의존해 정보를 받아들이던 우리나라 시사회에서는 착각이 더 오래갔습니다. 중반을 넘긴 뒤 조디 포스터가 '내 딸'이라고 단어를 꺼내자마자 제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수근거리더라고요. "저 애가 딸이었어?"

3. 멕이 사라에게 하는 대사 "It's disgusting how much I love you"는 근사한 발렌타인 데이 카드 문구처럼 느껴집니다.

4. 옆집 아저씨로 나오는 앤드루 케빈 워커는 [세븐]의 작가입니다. 멕의 전남편으로 나오는 패트릭 바쇼는 [프리텐더 제로드]의 시드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