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토프 강스 Christophe Gans

주연
라다 미첼....로즈 다 실바
Radha Mitchell....Rose Da Silva
숀 빈....크리스토퍼 다 실바
Sean Bean....Christopher Da Silva
로리 홀든....시빌 베넷
Laurie Holden....Cybil Bennett
데보라 카라 웅거....달리아 길레스피
Deborah Kara Unger....Dahlia Gillespie
킴 코티스....토머스 구치 형사
Kim Coates ....Officer Thomas Gucci
타냐 앨런....안나
Tanya Allen....Anna
앨리스 크리지....크리스타벨라
Alice Krige....Christabella
조델 펄랜드....샤론 다 실바/알레사 길레스피
Jodelle Ferland....Sharon Da Silva/Alessa Gillespie

로즈와 샤론

전 [사일런트 힐]이 괜찮은 호러 영화의 원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게임 시리즈를 끌어가는 건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무대와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각색자 마음대로 적절한 주인공들과 스토리를 만들어 보다 영화적인 작품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단지 여기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를 위해 게임을 멋대로 해체할 수 있을만큼 담이 크고 매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프 강스는 첫 게임이 나온 뒤로 이 시리즈의 우주에 홀딱 빠져 영화 권리를 얻기 위해 5년이나 발버둥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로저 에이브리와 같은 일급 각본가가 참여했다고 해도 걱정될 수밖에 없죠.

예상대로 영화가 개봉되었을 무렵 현지평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강스의 영화는 작품 자체보다는 당시 이버트 영감이 불씨를 던졌던 '게임은 (좋은) 예술인가?'라는 토론을 위한 장작으로 더 쓸모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이 토론도 결코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서로의 감정만 더 상하게 했을뿐이죠.

제 의견은 뭐냐고요? 크리스토프 강스의 [사일런트 힐]은 그렇게까지 좋은 '예술'이 아니라는 거죠. 솔직히 실망했어요. 입소문을 들은 뒤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전히 제가 습관적으로 응원할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전 라다 미첼을 좋아하고 조델 펄랜드도 좋아하며 두 사람의 경력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길 바라고 있어요. 앨리스 크리지도 볼 때마다 반가운 배우고요. 그리고 그들은 이 영화에서 모두 괜찮습니다. 미첼은 딸을 위해 온 몸을 던질만한 엄마처럼 보이고 펄랜드는 예쁘고 소름끼치며 크리지는 적절하게 불쾌한 광신도처럼 보입니다.

보기도 좋은 영화입니다. 게임 팬들이 원작의 분위기만을 즐기러 왔다면 불평할 이유는 없을 거예요. 약간의 재해석과 새로운 괴물이 보이긴 해도 영화의 사악한 분위기는 좋은 의미에서 오리지널 게임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적절한 선을 넘어 지나칠 정도로 게임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일런트 힐]은 [디오에이]나 [툼 레이더]보다 훨씬 게임처럼 보이는 영화입니다. [디오에이]도 그렇게까지 영화처럼 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린 두 늘씬한 미녀들이 방방 날아다니며 서로를 치고받는 광경을 비교적 순수한 영화적 쾌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일런트 힐]을 보는 동안에는 게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사일런트 힐]이나 비슷한 종류의 호러 서바이벌 게임에 익숙한 관객들이 더 강하게 느낄 거예요. 암만 봐도 사일런트 힐에서 딸을 구출하려는 로즈의 모험은 컴퓨터 게임 같아요. 로즈는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게임 캐릭터처럼 사일런트 힐의 미로 안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모으고 퍼즐을 풀고 괴물들을 피해 달아납니다. 이 모든 행동들은 지독할 정도로 규격화 되어있고 관습화 되어 있지요.

만약 이게 진짜 게임이라면 로즈의 행동은 별 문제가 안 됩니다. 그건 게임의 규칙이고 그 우주 안에서는 당연한 순수성을 부여받지요. 하지만 영화 속의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을 하는 대신 게임 캐릭터의 흉내를 낸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관객들은 그 이야기의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지요. 아무리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등장시켜도 테마 파크의 캐릭터 인형들처럼 보이는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괴물들의 동작은 안무된 느낌이 지나치게 강합니다. 특히 병원 장면에 나오는 간호사 무리들은요.

이 작품이 무섭지 않은 것도 지나치게 원작의 형식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호러 게임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면 안됩니다. 뭔가를 더 추가해야 하지요. 호러 게임이 주는 자극의 상당 부분은 게이머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진 자유의지에서 나옵니다. 구석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과 그런 공간에 들어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죠. 영화는 그 빈 자리를 채울 생각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일런트 힐]의 영화적인 부분도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합니다. 일단 라다 미첼이 열심히 연기하긴 하지만 로즈 캐릭터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심각한 민폐 캐릭터거든요. 이 사람이 조금만 이성적으로 행동했어도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을 사람들이 꽤 됩니다. 주인공이 꼭 똑똑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식의 민폐 행동만 고집하면 곤란하죠.

로저 에이버리와 크리스토프 강스가 변형시키고 추가한 설정도 별로 안 좋습니다. 그들이 악당으로 택한 근본주의 광신도 마녀사냥꾼들은 뻣뻣하고 어색하고 지나치게 말이 많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너무 말이 많죠. 다들 사일런트 힐의 역사를 설명하고 비밀을 폭로하느라 지독할 정도로 바쁩니다. 이는 액션과 정보수집이 분리된 게임의 성격이 영화 속에 어색하게 이식되었기 때문인데, 하여간 분위기 깨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조델 펄랜드가 연기한 컴컴한 알레사가 과거 이야기를 설명하는 장면은 그냥 민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보다 더 어색한 부분은 로즈가 교회로 들어와 그 광신도들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장면이겠죠. 호러 영화가 이렇게 말이 많으면 어떻게 합니까?

암만 생각해도 강스와 에이버리는 이상적인 각색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일런트 힐] 영화의 가장 이상적인 각색자는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지만 대충 그 동네가 어떤 곳인지 막연히 전해 듣고 그 정보를 통해 멋대로 자기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아직도 속편을 제작하고 싶어한다면 그런 사람을 하나 찾아보시길. 배경 음악까지도 게임에서 그대로 따와 쓸 정도로 순종적인 팬들이 도대체 뭘 하겠습니까? (06/11/13)

DJUNA

기타등등

숀 빈은 참 딱하더군요. 그 사람 나오는 장면들은 몽땅 지워도 스토리 전개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거든요. 하긴 초고 각본에서 여자만 나온다고 제작사가 불평해서 나중에 추가한 캐릭터라고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