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브래드 버드 Brad Bird

주연
일라이 마리엔탈....호가드 휴즈
Eli Marienthal....Hogarth Hughes
빈 디젤....아이언 자이언트
Vin Diesel....The Iron Giant
제니퍼 애니스턴....애니 휴즈
Jennifer Aniston....Annie Hughes
해리 코닉 주니어....딘 맥코핀
Harry Connick Jr.....Dean McCoppin
제임스 개몬....마브 로치/플로이드 터보
James Gammon....Marv Loach/Floyd Turbeaux
클로리스 리치먼....텐시지 부인
Cloris Leachman....Mrs. Tensedge
크리스토퍼 맥도널드....켄트 맨슬리
Christopher McDonald....Kent Mansley
존 마호니....로가드 장군
John Mahoney....General Rogard
M. 에메트 월시....얼 스터츠
M. Emmet Walsh....Earl Stutz

1.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는 하나의 장르를 낳았습니다. 이국적이고 귀여운 괴물과 지구인 친구의 우정을 다룬 감상적인 판타지를 말이에요. 이런 유행에 불을 당긴 사람은 스필버그 자신이었어요. [E.T.]가 성공한 이후, 그는 수도 없이 자신의 공식을 복제 생산해왔으니까요. [그렘린] 시리즈, [해리와 핸더슨], [8번가의 기적]... 자잘한 예까지 들려면 끝도 없습니다.

이들 중 진짜 성공한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지나치게 뻔한 공식과 사카린 냄새가 나는 감상주의로 어정쩡한 수준에서 멈추어 버렸지요. 사람들은 [E.T.]의 뻔하디 뻔한 공식에 질려 버렸고, 이런 유행은 90년대가 되기 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테드 휴즈의 동화 [아이언 맨]을 각색한 이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고편을 본 사람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소년과 외계에서 온 로봇의 우정이라는 스토리 라인에 질려버렸으니까요. 아마 다들 또다른 [E.T.] 클론을 또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결코 뻔한 [E.T.] 클론이 아니었으니까요. 클론이긴 했어도 최상급의 클론이었지요. 이 영화의 완성도는 심지어 오리지널인 [E.T.]의 완성도를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감독인 브래드 버드는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것입니다. 거의 전설이 된 영화를 흉내내면서도 그에 맞먹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죠.

2.

[아이언 자이언트]는 1957년 메인 주의 로크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이 시대 배경은 아주 미묘합니다. 57년은 스푸트니크가 미소 우주 개발에 불을 당긴 해이며, 구식 SF물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냉전이 불러일으킨 매카시 선풍과 레드 컴플렉스,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극을 달한 시대이기도 하죠.

로크웰이라는 마을의 이름도 절묘합니다. 이 이름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커버 화가 노먼 로크웰과 이름이 같고, UFO 소동으로 유명한 로스웰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가장 온화한 미국적 이미지와 UFO 공포증이 이름 하나에서 만난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9살 난 소년 호가드 휴즈입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엄마의 반대 때문에 늘 애를 먹는 아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외계에서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로봇이 불시착하고, 호가드는 로봇을 애완동물처럼 키우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이쯤해서 방해꾼들이 나타나죠. 이 영화에서는 냉전 시대 컴플렉스로 머리가 가득 찬 정부 요원 켄트 멘슬리입니다.

뻔한 [E.T.] 스토리지만, 영화는 50년대 말의 시대 배경을 정확하게 이용하면서 막혀있는 것처럼 보였던 장르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비판을 담은 우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론 냉전이 끝난 지 한참 뒤의 작품이니, 이 비판에는 직접적인 현실 비판의 날이 서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까지 기대할 필요는 없겠지요. 당시 레드 컴플렉스에 대한 영화의 야유섞인 묘사는 정확하고 흥미진진하니까요. 범위를 좀 좁힌다면, 영화는 미국의 총기 규제 이슈에 대해 꽤 강한 정치적 주장을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슈들에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뻣뻣한 교훈극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소망 성취 환상과 경외감으로 가득 찬 판타지인 동시에 강한 정서적 힘으로 가득 찬 드라마이며, 훌륭한 액션물일 뿐만 아니라, 재기발랄한 코미디이며, 종교적인 갱생담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모두 다양한 레벨로 작동하면서 아이들과 어른 모두를 매료시킵니다. 아이들은 로봇과 슬랩스틱 코미디에 흥분할 것이고, 어른들은 매카시즘과 핵전쟁 공포증, 워싱턴 관료들에 대한 정치적 농담이나 50년대 대중 문화에 대한 향수, 역사적 디테일, 미묘한 성인 유머에 끌리겠지요. 영화는 스위스 군용칼처럼 이 모든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데, 그 결과는 한 마디로 아름답습니다.

3.

[아이언 자이언트]가 성공한 또다른 부분은 이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입니다.

[인어 공주]의 성공은 미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제2 부흥기를 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스타일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이 블록버스터화 되자, 이들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더욱 노골적이 되었죠. [왕과 나]와 [매직 스워드]와 같은 영화들을 보세요.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디즈니의 흐릿한 복사품에 불과했습니다.

브래드 버드는 이런 디즈니 유행에서 [아이언 자이언트]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는 50년대의 노스탤지어 가득 찬 느낌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워너 브라더즈의 전성기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뒤섞은 듯한 간결한 이미지를 창조해냈습니다. 그 결과물은 노먼 로크웰만큼이나 미국적이지만 동시에 디즈니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타이탄 A.E.]나 [아나스타샤]가 노골적인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장식하는 동안, [아이언 자이언트]는 보다 소박하지만 미학적으로는 훨씬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아이언 자이언트는 3D 컴퓨터 그래픽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티가 거의 나지 않지요. 3D 오브젝트로 만들었지만 색칠은 2D로 했기 때문이랍니다. 그 때문에 로봇은 셀 애니메이션의 다른 캐릭터들과 아무런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뒤섞일 수 있었습니다. 필요 이상의 욕심은 내는 것이 아니라는 훌륭한 교훈을 제공해 준 것이죠. 다들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4.

아직도 [아이언 자이언트]는 대중들의 무심함과 일단 영화를 본 소수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 사이에서 어정쩡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워너는 이 영화를 어떻게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비디오 마켓에서도 그렇게까지 잘한 것 같지는 않아요.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그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영화이니 말입니다. 작품 질을 떠나서 이처럼 멋진 오락물이 관객들을 찾을 수 없었다니 모두에게 손해였던 셈이죠. 흥행전선에서 잘 했더라면 미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에도 큰 공헌을 했을테니 이 역시 모두에게 손해인 셈이고요. (00/03/11)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원작자인 테드 휴즈는 영화가 만들어지던 1998년에 세상을 떴습니다. 명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