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약한 스포일러있을 지도...

 

1.

막 보고 왔습니다.

오태석선생님 연출은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이후 오랜만이군요.

아니 이상우선생님의 '변'과 박근형의 '햄릿'을 본 게 2008년이었던 듯하니 근 이 년만에 연극을 보네요.

연극 두편을 한 편 가격에 본다는 데 혹한 게 사실입니다. ㅎㅎ

 

2.

'분장실'은 정말 좋았습니다. 중간 쉬는 시간에 나가서 프로그램까지 샀으니까요.

예순 일곱개인가 연극 프로그램을 모으다 한동안 사질 않았는데, 보고나니 이 프로그램은 사고 싶어졌어요.

 

초반의 체홉의 '갈매기' 대사를 읇는 배우들의 연기가 어딘가 걸려서 의아했는데, 금방 적응했습니다.

다른 희곡에서 온 대사들은 기본적으로는 (안좋은 의미로의) 연극적으로 연기하더군요.

여배우 C를 연기하신 조은아 언니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제 안에 있는 모든 고뇌를 대신 살풀이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맘이들었어요.

제가 본 연극 중엔 보이체크에서 이대연 아저씨 연기 이후 가장 좋은 연기였습니다.

여배우D가 유령이 되면서 읇는 '세자매' 대사가 나올 즈음엔 아, 내가 와인을 좀 줄이고 다시 연극들을 봐야겠구나하는 마음마저 들더군요.

기본적으로 목화의 배우는 훈련이 잘 돼 있어요. 발뻗는 동작 하나 하나, 에누리가 없습니다.

(사실 한국 영화는 목화나 연우무대에 빚지고 있는 게 많아요. 

전 종종 한국영화를 보다가 오태석님, 김광림님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짝짝짝!!!

 

3,

'춘풍의 처' 는 잘 만들었습니다.

손진책님의 마당 놀이처럼 계속 폭소가 터진다거나 하진 않지만 비장함과 웃음을 동시에 던지는 데 아주 탁월합니다.

목화 배우들의 대사 발성능력과 감정 전달력은 놀라워요.

오래전 본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때는 제주도 방언으로 연극을 하는 데,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알아들을 수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전 외가집이 제주도인데 외가 친척들 말 하나도 못 알아 듣습니다. 그러니 더 깜짝 놀랬죠.)

춘풍의 처도 모르는 단어들이 툭툭 섞여 나오는데 알아 먹겠는, 신기한, 연극에서만 가능한 굉장한 경험을 줍니다.

그런데도 어딘가 불편했는데, 마지막 배우들이 인사하며 탈을 벗을 때 깨달았습니다.

(공연 내내 탈을 쓰고 연기합니다)

아, 저게 장막이었구나. 제 소견엔 탈은 없었어야 했어요.

 

4.

정말 열심히 잘하시는 배우 분들을 뵈면 모두 다들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쪽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친구들을 봐서 아니까요.

제가 정말 연극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신인? 배우가 둘 있었는데,

한 분은 기국서님의 '타이거'에 나온 윤제문 아저씨고  

한 분이 '지구를 지켜라'에 순이로 나오신 황정민 언니였어요.

아, 황정민 언니는 뭐하고 계실까요.

 

5.

범우사 문고판으로  '태'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인데 노벨상을 한국에서 받아야만 한다면,

전 오태석 선생님을 지지합니다.

워낙 노벨 문학상이 희곡작가들이 많죠.

희곡은 독자뿐 아니라 배우들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거짓이 없어요.

소설은 그에 비하면 핵심을 피하고 사건을 교묘하게 미화시킬 때가 많아요.

 

6.

늦은 밤 혼자 와인 한 잔하면서 쓰다보니, 횡설수설이네요.

양해부탁이요 ㅠㅠ

어딘가 오늘 제 글에서 쓸 데 없는 스노비즘 쩝니다., 

 

7.

추신으로 얘기드리자면 일요일까지입니다. 서두르세요. 오늘도 만석에 보조석까지 다 차더군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30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84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5800
126372 고질라 마이너스 원 재밌네요 (스포) new heiki 2024.06.03 28
126371 듀나 데뷔 30주년 기념 포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듀나" - 7/21(일) 개최 new heiki 2024.06.03 52
126370 여성영화거나 공포영화인 오멘 리부트 감상과 후속편 예상...(웹툰 아포크리파 스포) new 여은성 2024.06.03 41
126369 에피소드 #92 new Lunagazer 2024.06.03 18
126368 프레임드 #815 [1] new Lunagazer 2024.06.03 23
126367 조나단 글레이저의 대표작 - 라디오 헤드 카르마 폴리스 MV new 상수 2024.06.03 63
126366 추억의 마니 (2014) new catgotmy 2024.06.03 78
126365 먹태깡, 하이 Hej 요구르트 catgotmy 2024.06.03 80
126364 황해 블루레이를 구입했습니다. ND 2024.06.03 96
126363 [디즈니플러스바낭] 적그리스도의 성공적 부활, '오멘: 저주의 시작' 잡담입니다 [6] update 로이배티 2024.06.02 289
126362 프레임드 #814 [4] Lunagazer 2024.06.02 45
126361 2024 서울 퀴어퍼레이드 후기 [9] update Sonny 2024.06.02 327
126360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스포있음) 상수 2024.06.02 220
126359 민희진 방탄소년단 저스틴 비버 catgotmy 2024.06.02 202
126358 [왓챠바낭] 어제 본 영화의 리메이크, '리빙: 어떤 인생'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4.06.02 202
126357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1] catgotmy 2024.06.01 118
126356 퓨리오사 & 극장 박스 오피스.. [11] theforce 2024.06.01 426
126355 퓨리오사 극장에서 보실 분들은 서두르셔야... [4] LadyBird 2024.06.01 435
126354 프레임드 #813 [4] Lunagazer 2024.06.01 55
126353 12년 전 여름 펩시 광고 daviddain 2024.06.01 10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