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배급 체계.

2014.03.18 15:08

잔인한오후 조회 수:1254

전 군대문화라고 뭉뚱그려 지적하면 정확하게 어떤 부분을 말하는 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나마 군대를 갔다와서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으면 감도 못 잡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가 생각하는 "그" 문제를 대략적으로 정의 내려봤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초점이 권력의 배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분 이전에 "누구에게 권력이 있어야 마땅한가?"라는 선행 가치관이 있어야 겠지만요.


1. 특정 원칙(대부분 체류한 시간)에 따라 세분되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다.

2. 특정한 금기와 의무가 존재하며 그 법칙에 대해 특정 원칙에 따라 (대부분 시간이 흐를수록) 자율권 및 입법권을 얻어간다.

(즉, 권력을 배급받는다.)

3. 상위 구성원은 하위 구성원에게 법을 지키도록 강제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4. 다만 그 집단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사적 법률에서 제시했던 것들은 이론의 여지없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죠? 전 이 문제가 어떤 역사적인 연원에 의한 것이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거시적으로 직선제가 시작된지도 30년은 훌쩍 넘었잖아요. 그리고 뭣 탓이라고 한들 해결책 만드는 재료와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단순하게 저는 한국에서 "누구에게 권력(위엄?)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잡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선후배 사이에서는 선배에게 권력이, 군대 선후임 사이에서는 선임에게 권력이 주어져야 된다는 간단한 이치죠. 조잡하게 위작된 권력 후광 같은 거 말이에요. "사회지도층"이란 단어도 있는데 뭐 이정도야 싶기도 하고.


이런 논리의 심층은 교사가 예전과 달리 힘이 없다, 와 같은 발언에 섞여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의 첫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해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학생에 대해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생보다 먼저 태어났거나 더 많이 알아서? 왜 대학의 선배는 후배보다 상위에 놓여야 할까요? 사회경험(?)을 더 많이 해서? 달리 말하면 한국의 평등의식 수준 때문인지도 모르죠. 이 문제는 차등, 내가 속한 집단과 상대가 속한 집단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논리를 깔고 있으니까요. 나는 저 꼬꼬맹이들보다 성숙하고 높은 위치에 있어. 그걸 부연하는 것이 내가 누리는 이 권력이지, 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선생의 한자 풀이가 먼저 태어난 사람이란건 아이러니하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심층의 차등 논리를 평등으로 바꾸는데 있다 생각합니다. 나는 그와 다르지 않아. 더 잘나지 않아. 그런거요. 부모와 자식이 평등하고, 스승과 제자가 평등하고, 개인과 개인이 서로 먼저 태어났을 뿐이지 별 다를 바 없이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는 거죠. 상당히 황당무계한 방책이긴 합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것들이 늘어나는데 왜 줄어들지 않는가 하면, 뛰어난 자기 유지력 때문이겠죠. 체계가 한 번 만들어지면 체계 자체가 생명체처럼 발버둥치기 시작하는데 이 체계의 단물은 2번 정의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군대에서 체험한 바로는 내재적 법의 입법 및 자율권이란게 외재적 법(대한민국 헌법)의 울타리를 넘나듭니다. 즉, 내적 집단 내에서는 심하면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합법인 자유(?)를 즐길 수 있죠. 간단한 예로 초병 근무를 정상적으로 서지 않는 등의 자유 말이죠. 그리고 다른 단 맛은 권력이 점층적으로 배급된다는데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어디서도 이제 연공서열제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금 그와 흡사한 형태의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커지는 이득은 이 체제 내 뿐입니다. 조금씩 얻어가는 권력 안에서 (개 중에는 자기가 굳이 원하지 않아도 억지로 주어지는) 그것이 없는 세계를 재구현하기란 매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전 이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잘 모르겠습니다. 혁명을 일으키든, 위에서부터 변화를 추구하든 해야 할 터인데 개인으로서는 무지 힘든 일이고, 외집단은 전혀 힘써 볼 도리가 없는게 사실이겠죠. 게다가 독버섯처럼 잘 퍼지기도 하고. 일종의 강력한 밈인거죠. 뭐, 다른 임시 방법으로는 집단 구성원의 100% 아싸화가 있긴 하겠습니다만.. (요샌, 아싸를 지향하기도 한다니까 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5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0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1
126079 마이클 잭슨 Invincible (2001) new catgotmy 2024.04.26 29
126078 [KBS1 독립영화관] 믿을 수 있는 사람 [2] new underground 2024.04.26 31
126077 뉴욕타임즈와 조선일보 new catgotmy 2024.04.26 76
126076 프레임드 #777 [1] new Lunagazer 2024.04.26 23
126075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1] new 산호초2010 2024.04.26 99
126074 한화 이글스는 new daviddain 2024.04.26 63
126073 낚시터에서 들은 요즘 고기가 안잡히는 이유 [2] new ND 2024.04.26 207
126072 토렌트, 넷플릭스, 어중간하거나 명작인 영화들이 더이상 없는 이유 [2] new catgotmy 2024.04.26 178
126071 [왓챠바낭] 전 이런 거 딱 싫어하는데요. '헌터 헌터' 잡담입니다 [5] update 로이배티 2024.04.25 315
126070 에피소드 #86 [4] update Lunagazer 2024.04.25 51
126069 프레임드 #776 [4] update Lunagazer 2024.04.25 50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1] update soboo 2024.04.25 698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daviddain 2024.04.25 45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catgotmy 2024.04.25 85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2] update 상수 2024.04.25 272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13] update Sonny 2024.04.25 1128
126063 3일째 먹고 있는 늦은 아침 daviddain 2024.04.25 124
126062 치어리더 이주은 catgotmy 2024.04.25 195
126061 범죄도시4...망쳐버린 김치찌개(스포일러) 여은성 2024.04.25 320
126060 다코타 패닝 더 위처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악마와의 토크쇼 예고편 [3] 상수 2024.04.25 183
XE Login